정금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더 사랑
정금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더 사랑
“그러므로 제가 당신의 계명들을 금보다도 또 순금보다도 더 사랑합니다”(찬양들 119장 127절).
이 위기의 때에 우리는 과거보다도 더 하나님의 진리에 덜 전념하고 그의 토라에 열렬한 애정이 덜함을 보여줄 것인가? 마쉬아흐께서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시기 전에 선언하신 바로 그 상태가 존재한다. 편만하고 있는 불신이 참된 믿음과 경건을 마비시키고 파괴할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쉬아흐인의 본래의 상태가 위선과 타락의 불순물과 대조하여 가장 빛날 때가 바로 이 때라는 것을 알려준다.
지금은 마쉬아흐의 택함 받은 자들이 주님을 위한 봉사에 그들의 헌신을 보여주고, 그의 모든 추종자들이 편만하고 있는 악의 조류에 대항하여 견고히 섬으로 그들의 주님을 위한 가장 고상한 증언을 전할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토라를 무시한 결과, 곧 부정직과 도둑질과 부도덕과 부절제와 살인을 보므로 찬양들의 기자처럼 “그러므로 제가 당신의 계명들을 금보다도 또 순금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말할 준비가 된다.
거룩한토라를 제켜두면 가족과 사회 양편에 가장 큰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좀더 좋은 소망은 야붸의 계명에 충실함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신앙심이 없던 프랑스에서 한때 하나님의 권위를 거절할 시도를 했다. 얼마나 두려운 공포의 장면이 뒤따랐는가! 사람들이 하나님의토라를 종의 멍에처럼 던지고 그들이 자랑하던 자유 속에서 가장 두려운 폭군의 통치아래 스스로를 두게 되었다. 무정부 상태와 유혈이 그 무서운 날을 지배했다. 그것은 질서와 정부의 기초를 허무는 가장 확실한 길이 하나님의토라를 무시하는데 있음을 세상에 실증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더 범죄하는데 대하여 조금이라도 변명하려고 느끼는 대신에, 마쉬아흐께서 토라의 권위를 유지하시려고 돌아가셔야 했음을 알고, 전에 없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의 정당함 앞에서 당신의 토라의 신령한 특성을 깨달아야 한다.
머지않아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준수하는 자에게 따르는 축복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