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가장 감동적인 공중에서의 만남
레드 북(Redbook) 잡지사가 미국에서 유명한 8개의 신학 대학원 세미나리에서 여론 조사를 하였는데, 그 학생들 가운데서 1%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회의주의의 원인은 위대한 전도자였던 D. L. 무디(D. L. Moody)선생의 경험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가 교회에 다닌지 1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첫 번째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그 설교를 듣고 난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왜 마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원치 않는지를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교리만큼 교회를 깨우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디 선생이 했던 지적이야말로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아주 이상스러울 만큼 잠잠한 것에 대한 이유와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를 깨울 수 있는 위대한 진리 위에 살며시 침묵의 이불을 덮어 씌운 것은 아닙니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만 331번이나 언급되어 있는 놀라운 예수 재림에 관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적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있어서 이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있는 사건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도 의심하거나 혼돈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2-3).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완전한 본향으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위하여 무한한 준비를 마련하여 왔지만, 우리가 죄의 오염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때까지는 성취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 지구의 역사 속에 임하게 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어떠한 방식으로는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복음주의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들 때문에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이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감람산 위에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시기를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에 나타나 있는 분명한 암시는 주의 재림에 관하여 잘못 인도하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두 번째 오심을 표시하는 중요한 징조들을 열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거의 전체에는, 사단이 이 문제에 대해서 온 세상을 기만하려고 하는 계략을 경고하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택한 자들까지라도 악한 자의 기만적인 출현에 의해 공격과 위협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기만하는 선지자들이 마지막 때에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면서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태복음 24:24). 지금까지 이러한 과감한 종교적 기만들이 나타났습니까? 실제에 있어서, 세계의 유명한 신문들에 의해서 많이 보도되어 왔습니다. 자칭 예수라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많은 거짓 주장들이 거절되어 왔지만, 이 세상은 은연 중에 초자연적인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하여 준비되어 왔습니다. 성경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만적인 주장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지구 상의 어느 특정 지역에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태복음 24:23-26). 성경의 말씀을 잘 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강림을 흉내 내려고 꾀하는 사단의 기만에 흽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TV 뉴스 아나운서들이 열띤 어조로 런던에, 뉴욕에, 로마에,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보도할 때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예수의 재림으로 믿게 될 것입니다.
사단이 그리스도로 위장함
만일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기만에 넘어가지 않도록 잘 방어되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다음과 같은 사람에 대해서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교묘하게 위장한 사람을 폭로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나 거기서 여러분은 자신들이 그토록 장엄한 현실을 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위로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보다 훨씬 큰 키의 한 위엄 있는 사람이 빛나는 두루마기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놀라운 힘의 광원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한 이 사람의 주위를 두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사용하셨을 것 같은 온화한 음성으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놀라움으로,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장님과 절름발이와 그 앞에 엎드린 온갖 병자들을 만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즉시로 병자들이 모든 병들과 허약한 점들로부터 고침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수많은 군중들의 외침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셨다! 여러분은 거리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함성 소리에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그 성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 이 숭고한 모습의 성자가 말하기를, 자신은 바로 이 땅에서 거룩한 치료와 가르침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재림한 메시야라고 공언한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찬송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일이 쉬운 일일까요? 여러분의 감정은 흥분될 것이며, 눈에 보이는 증거들로 인해서 압도될 것입니다.
왜 전 세계가 그러한 휘황찬란한 과시에 매혹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 속에는 신비하고 장엄한 광경에 이끌리는 선천적인 경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이 들더라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기 위해서 어디든지 갈 것입니다. 사단은 바로 이러한 인간들의 약점을 이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한 자까지 미혹될 위험성이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께서 어떠한 방식으로는 오시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임하실 것인지를 함께 알아봅시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스도의 재강림의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준 기록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잘못 해석을 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9-11).
이 성경 절에 나오는저희 보는 데서,보이지 않게,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쳐다보느냐,본 그대로와 같은 다섯 가지 표현들은 예수님의 승천은 실제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신비적인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먼 하늘로 올리워 가서 사라지는 모습을 육신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말하였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주의 오심은 당신께서 승천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주께서 구름을 타고 가셨으므로 역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 절이 이것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기록하기를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요한계시록 1:7). 짧은 한 성경 절 속에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하여 가장 놀라운 사실들 중 하나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늘 공간을 통하여 서서히 강림해 오실 때, 이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이 그를 볼 것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나라의 악인들이 다 같이 고개를 들고, 온 하늘을 가득히 채우면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셨습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공중 재림의 광경
인간과 악령들이 주의 오심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위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께서 이 지구로 오시는 찬란한 광경을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영광과 장엄함을 인간의 눈에 나타내 보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주께서 오실 때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함께 수행할 것을 읽습니다. 사도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 수십억 이상의 천사들이 있는데, 그 모든 천사들이 주께서 오실 때 그분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요한계시록 5:11).
때때로 한 천사가 인간들 앞에 나타나서, 하늘의 영광의 힘을 나타내었을 때에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한 천사가 앗시리아 군대를 밤에 쳤을 때에 18만 5천 명이 죽었습니다(열왕기하 19:35). 그와 같은 영광을 수천만 배 이상 더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가히 재림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족속과 민족이 그 놀라운 광경을 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밝은 번갯불이 각 사방으로 번쩍일 때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의 오심도 그러할 것입니다. 지구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환하여질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이 마지막 사건들이 어느 한 구석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눈에 완전히 보이게 임하는 것 외에도,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굉장히 큰소리가 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 4:16)라고 하였습니다. 그 놀라운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일 것입니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들릴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팔은 조용한 악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팔은 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종말을 고하는 또 다른 현상은 무엇인가요? 재림 시에, 큰 진동과 세계적인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이전에 전혀 없었던 파괴적인 것입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요한계시록 16:18,20). 커다란 파도에 의해서 사람들이 사는 섬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공포의 광경을 그려 보십시오. 선지자의 생생한 묘사에 의하면, 거대한 산맥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러한 광경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볼 때, 우리 주님의 강림은 유사 이래 가장 커다란 지각의 변동 사건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지구 상의 어느 한 사람도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악인들은, 지상으로 예수님을 에스코트하여 오는 수많은 하늘 천군들의 행렬이 다가올 때에 크게 동요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악인들이 자기가 거절하고 부인한 분의 임재 앞에서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묘사 하였습니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요한계시록 6:14-17).
두 단계로 오시지 않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들의 최후 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데살로니가후서 1:7-10). 의인들이 영화롭게 되는 동시에 주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그의 임재의 빛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 흥미로운 계시는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잘못 오도한 커다란 기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승천에 대해서는 비밀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으며, 소위 비밀 휴거는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명확한 성경 말씀을 읽은 바와 같이, 의인들이 영원불멸의 몸을 받는 그 같은 시간에 악인도 심판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매우 인기 있는 가르침인 휴거 즉, 예수께서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 7년 전에 오셔서 선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살짝 데려가신다는 관념은 아무런 성서적 뒷받침이 없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신비한 휴거 이후에 7년 동안 악인들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생존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 스토리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실 때 악인들은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진리가 왜곡되었습니까? 악인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볼 것입니다. 바울은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will appear)(히브리 9:28)라고 말하였으며, 베드로는 목자 장이 나타나실 때에(appear)(베드로전서 5:4)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주의 오심이 비밀스러운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가 나타나시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흑암 중에 처해 있을 때에, 그가 표현하기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사도행전 27:20)라고 말했습니다. 나타난다는 것은 눈에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에 나타나실까요? 나타나지 않으실까요? 많은 성경 절들이 주께서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신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믿기 원하는 바를 지지하기 위하여 나타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요라는 의미로 해석하시겠습니까?
도적같이 오심
예수의 오심에 대하여 설명하는 두 가지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많은 혼돈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오해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주님의 말씀 중에서 비밀 휴거를 증명하는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밤중에 도적같이라는 말씀과,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리라는 말씀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만일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모호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밤중에 도적같이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주께서 마태복음 24:42-44에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습니까? 주의 재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을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림은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것입니다. 주의 오심은 이 땅의 사람들이 가장 적게 기대하고 있을 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밤중에 오는 도적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비밀스럽게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앞에서 배운 것처럼, 주님께서 오시는 광경은 온 세상 사람들이 동시에 목격하게 될 장엄한 광경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오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50절에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재강조해 주시고 계십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묘사하면서 똑같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베드로 후서 3:10). 이 성경 절 하나 안에도, 요즈음 많이 논란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모든 증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실 때를 말하면서, 동시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는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상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장면을 예수께서 공중에 살짝 임하심과 동시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하늘로 비밀스럽게 들려 올려지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해석은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바와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언급한 큰 소리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에서, 너무 소리가 커서 죽은 자들까지도 깨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 외침과 나팔 소리인 것입니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함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이렇게 분명한 성경 절들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문맥에서 떼어내어 해석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 맷돌을 가는 두 여인의 예화에도 생겼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성경 절이 포함되어 있는 문맥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성도들의 비밀 휴거에 대하여 가르치신 어떠한 암시라도 있습니까?
문제의 성경 절인 누가복음 17장 34절부터 37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문맥의 전후를 읽어 봅시다. 26절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이 오실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그 당시와 지금의 세태는 너무도 유사합니다. 홍수가 나기 전에 어떤 이들은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받았습니다. 데려감을 받은 자들은 방주로 들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남아 있는 자들(버려둠을 당한 자들)은 흉융하는 물결에 의해 다 멸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다른 예화를 가지고 설명하시었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28-30절). 또다시, 유사한 장면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시로부터 안전히 데려감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버려둠을 당했습니다. 남겨둠을 당한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모두 불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자, 이제 34절로 가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여러분이 이 성경 절들을 해석할 때에, 바로 전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예증들과의 일치성을 꼭 마음에 두셔야 합니다. 매 경우마다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골라내는 일이 있고 나서 악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문맥이 말하는 바와 같이, 노아와 롯의 때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처럼,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다음에 계속되는 성경 절을 읽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바를 더욱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죽음)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37절).
예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들이 어디에 버려둠을 당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명확하게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의 시체는 독수리들이 뜯는 먹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성경 구절들이 말하는 바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해석입니다. 마지막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들이 갈라지는 일이 어떤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될 것이라는 암시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감의 말씀을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에 맞추려고 노력함으로써, 결국에는 성경 말씀을 곡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비밀 휴거가 있고, 7년 후에 다시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비성서적인 두단계 재림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가르쳐져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믿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도록 기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예수 재림 시에 버림받아 멸망하는 것이지, 비밀 휴거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7년 환난기를 통과하면서 회개하고 구원받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 이후에, 이 지상 어디에도 살아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며, 소위 7년 대환난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천주교회에서 태동한 휴거설
휴거설은 천주교회에서 400년 전에 기초를 놓은 가르침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러한 이론이 생기게 되었으며, 왜 이러한 이론이 생겼는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만약 휴거설과 미래 적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그토록 열렬히 지지하는 개신교인들이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종교 개혁 당시, 마틴 루터와 그의 동료 개혁자들은 과감하게 교황이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밝혔으며, 천주교회를 예언에 나타나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지목하였습니다. 이러한 공격에 대하여 천주교회의 지도층에서는 종교 개혁을 철저히 분쇄하기 위한 반 종교 개혁(Counter-reformation) 운동을 개시했고, 이 운동의 일환으로, 그러한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예언 해석을 만들기 위하여, 두 명의 제수잇(예수회) 신부들에게 방어용 예언 해석의 책임을 맡기었습니다. 이 두 신부는 개혁자들의 해석을 반대하기 위한 학설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신부의 이론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거의 모든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틴 루터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했을 뿐 아니라, 개혁 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모든 개신교회들의 항거 운동을 교묘하게 분리시키고 희석시키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오늘날, 종교의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나 제리 폴웰 목사 같은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이 미국과 바티칸의 정치적인 연합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토록 유명한 개신교의 대표자들이 로마 천주교회와의 연합에 대한 위험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 역시 다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종교 개혁자들의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 천주교회의 두 신부들의 논리에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루터나 웨슬레의 영적 후계자들이 원래의 가르침을 지금까지 붙잡고 있다면, 오늘날 단 한 명의 루터교회나 감리교회 교인도 천주교회와의 어떤 종류의 동맹도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이제 종교 개혁에 대항하는 선전 포고를 함으로써, 세계를 휩쓴 두 명의 스페인계 신부들의 가르침을 살펴봅시다. 먼저, 알카잘 신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에 대한 모든 예언을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즉, 교황이 로마를 지배하기 오래 전에 살았던 한 장군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이미 과거에 성취된 것으로 설명하였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목하였던 개혁자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해석 방법은 예언 해석의 분류에 있어서 과거주의 학파로 불려져 왔습니다.
그 반면에, 제수잇(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리베라는 해석 방법에 있어서 미래주의로 알려진 학설을 창안해 내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를 세상의 종말에 나타나서 3년 반 동안 세력을 유지하는 뛰어난 어떤 인간으로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도 교황을 향한 종교 개혁자들의 공격을 미래로 돌리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비성서적인 학설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백만의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파의 교인들이 예수회 신부들이 만든 잘못된 학설을 마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교리처럼 받들고 있습니다. 만일 루터와 함께 천주교회의 오류들에 대항해서 용감하게 일어섰던 개혁자들이 오늘날 부활하여서 개신교회의 이름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가르침들을 듣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입니다.
1800년도 초기에 예수회 신부 리베라의 미래주의 견해는 잘 다듬어지게 되었고, 7년 환난과 성도들의 휴거 같은 가르침들이 보강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가르침이 받아들여졌던 것은, 로마 천주교회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던 개신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영국의 플리머드 형제 교회의 쟌 넬슨 달비(John Nelson Darby)의 저술과 영향을 통하여, 이 새로운 교리가 미국에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이러스 스코필드가 1909년도에 펴낸 스코필드 주석 성경의 해설 속에 이 가르침을 집어 넣음으로써, 19세기 중엽과 말엽에는 미래주의 가르침이 크게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구원과 보상
이제,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국면으로 들어갑니다. 왜 예수께서는 이 지구 상으로 다시 돌아오실까요?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한 답을 기록하였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
길고 긴 수천 년의 고난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침내 사단의 악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귀의 세력의 증표는 지상의 공동묘지들과 전쟁 전사자들의 기념비들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부르짖음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부터 모든 세대의 역사를 통하여 점철되어 왔습니다. 죄의 저주가 걷히고 모든 인류의 최대의 원수가 영원히 없어지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십니까?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글로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시는 보상은 지구 상의 어느 언어로도 적당하게 묘사할 수 없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죽은 의인들의 부활은 장엄한 초점을 이룰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자고 있던 수많은 자들은 마치 꿈도 꾸지 않고 하룻밤 자고 난 것처럼 깨어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일생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혀온 통증으로부터 자유케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저 만지거나 소리를 들어야만 사랑하는 자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맹인들의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순식간에 변화하여 영원히 죽음과 고통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 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린도전서 15:51-53). 부활한 자들이 공중에서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일어나고 모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순식간에 불멸하는 젊음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발은 그때에 땅을 밟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우주적인 재회는 기나긴 지구 상의 역사 가운데 가장 황홀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그 절정의 사건을 가장 열띤 어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특수성과 그것이 어떻게 지구의 거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개신교회를 세운 개혁자들의 성경적인 견해를 잃어버렸으며, 천주교회에서 유래된 휴거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게 된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오심은 몹시 두렵고 황당무계한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림 사건에 대해 무감각한 느낌을 가지는 이유는 대개 그들이 주님을 맞이할 개인적인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훔친 달콤한 것들
재림에 대한 개인적인 준비와 확신의 부족으로 인하여, 많은 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막연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님을 보기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조차도 모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슬픈 이야기 중의 하나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주님을 만나게 될 재림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습니까?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오심에 대하여 열광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 노래하며 설교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복스러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음식을 잘 만드는 분이셨는데, 특히 맛있는 케익은 일품이었습니다. 어릴 때에 어머니께서 케익을 겹겹이 놓고 그 위에 맛있는 크림을 덮는 모습을 지켜보던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제일 신나는 시간은 어머님께서 케익을 덮고 남은 크림을 먹으라고 허락하실 때였습니다. 불행히도 어떤 때는 별로 많이 남지 않았지만, 항상 한 숟가락 정도는 긁어 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맛있고 달콤한 것들이 케익 주위에 서서히 붙는 장면을 열심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가끔 그 가장 자리들이 너무 두꺼워져서 굳어진 크림이 떨어져 밑받침 위에 쌓일 때도 있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은 어머니가 크고 아름다운 케익을 테이블 중앙에 놓아둔 채, 나를 혼자 집에 남겨둔 날이었습니다. 새로 장식된 케익에서 두꺼운 크림이 밑으로 흘러내린 것을 침을 흘리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달콤한 것들이 밑받침 접시에 거의 흘러 내린 것처럼 보였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케익의 주변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먹기 위해서 뻗쳤습니다.
그때 갑자기 문밖으로부터의 인기척과 함께 어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몰래 훔쳐먹은 흔적을 없애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셨던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제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순간 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손 안에는, 이 세상에서 훔친 달콤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붙잡고 있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낙원으로 돌아감
하나님께서는 인류 가족을 태초부터 계획하신 죄 없는 상태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에덴 낙원의 완전한 상태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 인간의 모습도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새 에덴과 옛 에덴 사이에는 생활의 질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담은 조건적인 불멸의 몸을 받았지만, 구속 받은 자들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받을 것입니다. 비록 선택의 능력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지만 불멸을 입은 성도들 중 어느 누구도 다시는 하나님을 불순종하기로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사단의 성품이 오랜 세대에 걸친 대쟁투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우주는 더 이상의 반역과 불순종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죄의 결과를 보았으므로, 아무도 고통과 슬픔의 경험을 되풀이 하려고 선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의 다시 오심은 참으로 영화로운 진리입니다. 이 세상은 산산조각 난 평화의 계획들과 깨어진 조약들과 수포로 돌아간 희망들로 인하여 병들어 있습니다. 인류는 두려움과 불안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인간의 근심을 조장하는 모든 것들에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빈곤과 질병, 전쟁과 죽음은 가장 흔한 스트레스의 원인들인데, 그러한 모든 것들은 주께서 오실 때에야 비로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감격스러운 기대는, 우리가 예수의 얼굴을 대하고 그분의 임재 속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품어 왔던 소망과 꿈들의 가장 높은 클라이맥스가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우리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점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곧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제2부 - 성경으로 살펴본 "비밀 휴거설"에 대한 허구성
오늘날,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현대 종교계에 엄청난 교리적 혼동의 요인이 되어온 신학적 질문이 있습니다. 그 질문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실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의문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분리된 두 사건을 통하여 두 번 세상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비밀리에 오셔서 교회를 하늘로 데리고 가시고, 그 후 7년 후에 능력과 영광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의 사이 즉, 7년 동안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이 기간 동안이 대환난의 기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을 보아도, 이처럼 예수께서 두 번 따로 오신다고 말한 곳은 없습니다. 먼저 휴거가 있겠고, 7년 후에 다시 그리스도의 강림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휴거라는 말은 신학자들이 지어낸 말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강림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비밀리에 오실 것인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밤에 도적같이 오실 것이라는 성경 절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밤에 도적같이 고요하고 비밀리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런 뜻입니까? 그 말씀이 전혀 그런 뜻이 아님을 설명해 주는 성경 절을 찾아봅시다. 베드로후서 3:10에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밤에 도적같이 비밀리에 오신다는 말씀이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있을 휴거(비밀 승천)라면, 어떻게 베드로가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휴거주의 신학이 7년 기간을 매우 자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그 기간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단 한 구절도 7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휴거주의 저작물들은 성경상의 증명이나 설명을 제시하지 않은 채 7년 동안의 환난 기간을 언급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도 잘 교리화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증명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휴거주의자들이 7년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9장 24-27절을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것에 놀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의 유예 기간에 대해서 놀라운 예언을 하셨습니다.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즉, 70이레의 해 RSV)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24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0주의 기간을 허락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의 오심을 위해서 준비할 기간을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70주(week)는 예언적인 기간인데, 이것은 성경의 예언 해석법에 의거하여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야 합니다(에스겔 4:6를 참조할 것). 그러므로 70주는 실제로 490년의 기간이 되며(70주에 7일을 곱하면 490일이 되는데, 이것은 기간적인 예언을 해석할 경우에 490년으로 환산됨), 그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야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가로서의 은혜의 기간이 끝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90년이라는 긴 기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잘 준비하여 메시야를 영접하게 되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다니엘 9장 25절의 70주에 관한 예언은 예루살렘 중건령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날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닥사스다왕이 조서를 내린(에스라 7:7-13) 기원전 457년입니다. 기원전 457년부터,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절함으로써 그 죄악의 잔을 다 채우기까지 정확하게 490년이 걸렸습니다. 490년 동안의 유예 기간은 주후 34년에 끝나게 되는데, 이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9장 25절은, 70주일 중에서 69주가 지난 후에 메시야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이 예언의 시작점인 기원전 457년 즉,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이 선포된 해로부터 483년 후입니다(69주에 7일을 곱하면 483일이 되는데, 이것은 483년으로 환산됨). 이 예언의 시작점인 예루살렘성의 중건령 선포 연도인 기원전 457년부터 483년을 내려가면, 주후 27년이 되는데, 그 해는 바로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던 해이며, 동시에 지상 봉사를 시작하셨던 해입니다. 또한 메시야라는 단어의 뜻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사건은 메시야가 주후 27년에 나타날 것이라는 다니엘의 예언의 확실한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중요한 문제를 좀더 연구해 봅시다. 70주일은 유대 나라의 유예 기간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메시야로 나타나신 것은 69주가 마치던 해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유예 기간이 끝나기까지는 한 주일(70번째 주, 즉 7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계속해서 27절에 나오는 예언은 70번째 주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이레의 절반(일주일의 반, 즉 7년의 반은 3년 반임)은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후에 공중 봉사하실 기간인 3.5일(3년 반)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신약 성경은 다니엘의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시켰습니다. 즉, 예수님의 지상 봉사가 3년 반 동안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주후 31년 봄에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는데(마태복음 27:51), 그것은 희생 제도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성소에서 양을 잡아 죽이는 희생 제도를 끝나게 했던 것입니다. 7년 기간 중에서 나머지 3년 반이 지나면 70주가 채워질 것인데, 그때에 유대인의 유예 기간이 끝날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3년 반 동안, 제자들은 주로 유대인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후34년(3년 반 후)에 스데반이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던 때에 드디어 70주일의 유예 기간은 끝났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교와 함께 유대 국가의 유예 기간은 마치게 되었고, 드디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사도행전 8:4). 유대인들은 끝까지 복음의 기별을 거절하였고, 그래서 다니엘이 예언한 그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이방인들과 똑같이 개인 단위로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한 국가로서 선택받은 백성이 되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유예 기간의 끝을 알리는 다니엘 9장 27절에 대해서 신약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v마태복음 23: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v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v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v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v로마서 9:6,8,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신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을 가납하시며, 육체적 이스라엘을 거절하실 것을 가르칩니다.)
v로마서 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v 사도행전 13:46,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이제, 우리는 휴거주의자들이 어떻게 7년이라는 환난 기간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 즉 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는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인들을 비밀리에 데려가신 후에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7년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어떤 성경 절이라도 붙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 9장 25절의 69주일이 그리스도의 초림 기간에 관한 예언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69주와 마지막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의 간격을 집어 넣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예언의 시간표를 483년(69주) + 2000년 + 7년(1주) 즉, 총 2490년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성경적이고 비역사적으로 곡해함으로써, 유대인의 유예 기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것을 근거로 해서 모든 혈통적 유대인들이 휴거가 있은 후, 두 번째 기회에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휴거론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고 모순된 것인가를 살펴보았는데, 그들의 주장은,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성도들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처음 몇 절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1-4절).
바울의 말은 너무도 자세하여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에 앞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어린아이나 개인적 편견이 없는 사람에게 이 성경 절의 의미를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이 성경 절들은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에 불법의 사람(적그리스도)이 나타날 것임을 말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이 편지서를 기록한 지 2000년 후에 갑자기 나타날 슈퍼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7절)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벌써 그 당시 나타나던 적그리스도의 영과 싸웠습니다. 주후 6세기쯤에는 적그리스도가 이미 성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기만극의 속임수는 주의 강림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의 순서를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절).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적그리스도가 멸하여질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강림 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7년 동안 세상을 장악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히기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는 가르침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종교 개혁 시대의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중세 시대 동안의 엄청난 배도를 자행한 조직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물론 로마 천주교회는 개혁자들의 해석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자들의 해석을 무효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던 노력을 살펴봅시다.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청은 마침내 분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따라서 교황청이 적그리스도라는 생각을 없애기 위해 다른 해석법을 내놓았습니다.16세기 말쯤 해서 로마 천주교회의 뛰어난 학자 두 명이 이 일에 자신들을 헌신하기로 하고,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각기 달리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종교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시의 교황권 제도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하기 위하여 적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예언 해석법을 창안해 내려고 하였다. 제수잇(예수회) 신부인 알카잘은 심혈을 기울여 예언해석의 과거주의를 고안해 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교황이 로마에서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애썼다. 반면에 제수잇(예수회)의 리베라 신부는 미래주의 해석 체계를 내놓음으로써,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하는 것을 막고자 시도하였다. 그 해석 체계란,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교황권의 행적에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 인물 즉, 3년 반 동안 권력을 행사하게 될 인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알포드가 말한 바와 같이, 1580년경에 살았었던 제수잇 신부 리베라는 현대의 미래주의 해석 체계의 창시자라 볼 수 있다&. 오늘날, 미래주의 해석체계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신교도들인데, 그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영향력을 받아서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성경적인 진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주는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요셉 태너, 다니엘과 계시록, 16,17페이지).
휴거의 이론과 미래의 적그리스도 이론은, 제수잇의 두 신부가 교황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 해석을 왜곡시켜 놓았던 데에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두 단계 재림론 역시 불미스런 역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견해가 가르쳐지기 시작한 것은 1830년경부터였습니다. 에드워드 어빙 목사가 시무하고 있던 교회에 다니던 마가렛 맥도날드 양은 그 당시 영감적인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또 다른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했는데, 그 재림은 비밀스럽고 특별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대규모로 받아들여지도록 크게 기여한 사람은 영국의 성공회 신부이었으나 그 후 플리머스 형제단의 창설자가 된 죤 넬슨 달비(John Nelson Darby)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북미에 널리 퍼졌는데, 그의 그르침을 굳게 믿었던 사이러스 스코필드가 그것을 1909년에 발행한 자신의 Scofield Reference Bible 난외주에 넣음으로써 대단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이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졌고, 특히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가르침과 설교를 아무런 재고와 개인적인 성경 연구 없이 받아들인 수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끝으로 휴거주의자들은 휴거 되지 않은 자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환난 기간 동안에 주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단언하건대, 성경의 어느 곳에도 두 번째 기회에 대해서 언급한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예수께서 오신 후에,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받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또 하나의, 인간이 고안한 교리입니다. 이 성경 절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 요한계시록 22:11,12,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분명히 유예의 기간은 재림 직전에 끝납니다).
" 예레미야 8:20, 추수할 때(재림의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는 손에는 이한(예리한) 낫을 가지고 오십니다(요한계시록 14:14). 이 재림은 죄의 씨를 뿌려온 6천 년의 기간 후에 있는 추수 때를 말합니다. 또한 추수 때는 세상 끝(마태복음 13장 39절)입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요한계시록 14:16). 예레미야는,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예레미야 8:20)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세상의 추수가 끝난 다음에는 구원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실 때에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5:32). 그 큰 무리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각자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자신이 한 일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밀 휴거설과, 인간을 즐겁게 하려는 모든 사상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굳게 서십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성경은 예수께서 당신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본향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영광 중에 재강림하실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재림은 살아 있는 모든 의인과 악인이 동시에 알 수 있게 실제적으로, 가시적으로, 가청적으로, 세계적으로 그리고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일어날 것이고, 지진으로 천지가 진동하는 요란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참고 성경 절: 행 1:11, 요 14:3, 마 24:27, 계 1:7, 살전 4:16, 마 24:31, 마 16:27, 24:30, 계 6:14, 벧후 3:10, 계 16:18). 의인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려 거기서 주를 뵙게 되는 반면, 악인들은 그 강림의 광채로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8).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여 우리의 최대의 놀라운 소망인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속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다.
'지상 강의 > 성경으로 돌아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호 한번 얻은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있나요? (0) | 2011.06.07 |
---|---|
제5호 하나님의 은혜가 계명을 폐하는가? (0) | 2011.06.07 |
제3호-십자가의 숨겨진 의미 (0) | 2011.05.01 |
제2호-무덤 너머 저편 . (0) | 2011.04.29 |
제1호-지옥을 보셨나요? (0) | 2011.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