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과 낙원의 회복
공부할 내용: 요한계시록 22장
기억할 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서론:
요한계시록 22장은 21장의 연속이며 21장에 미처 기술되지 못한 새 예루살렘의 내부 환경을 기술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끝맺는 말을 기록한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는 성경 전체의 결론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인 22장은 그 결론의 결론을 기술한다.
창세기의 처음 장들에는 죄의 침입, 실낙원, 하나님과의 이별, 죽음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에는 잃어버렸던 낙원의 회복, 생명수, 생명강과 생명나무, 하나님의 임재 등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의 계시가 없었다면 성경은 완성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언어로는 의인들의 받을 보상을 묘사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다만, 그것을 바라다보는 자들에게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될 것이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낙원의 그 영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성경은 구속자의 유업을 본향이라 부른다. (히 11:14~16)
영원한 목자가 그의 양 떼를 생명수의 샘 근원으로 인도한다. 생명나무는 매달마다 그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은 만국을 소성하게 한다. 수정과 같이 맑은 시내가 항상 흐르고 그 옆에서 흔들리는 나무들은 구원받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길 위에 그들의 그늘을 던져준다. 한 때 순례자요 방랑자로서 지냈던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진정한 본향으로 찾아든다.
그때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일지라도 그들을 유혹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유혹자도 없으며 악의 가능성도 없다.
그들은 이미 악의 시험을 이겼고, 또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중에서 또 다시 악에 빠질 자는 없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9)
생명강과 생명나무
1. 생명강은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흐르는가?
(참고 성경절)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계 22:1~2 상단)
(해설)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 길 가운데로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 강은 온 땅의 지면을 윤택하게 하였다.
다윗은 이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한 하수가 있어 나뉘어 흐르는 것이 하나님의 성으로 즐겁게 하니 이 성은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로다.” (시 46:4)하였으며 또 기록하기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신다.
대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 36:8~9)하였다.
2. 요한은 생명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음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참고 성경절)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2 하단)
(해설)
생명나무는 생명강 양편에서 자라 늠름하게 흐르는 시내 위로 높고 장엄한 아치를 형성하여 생명을 주는 가지들이 양편 멀리 뻗어 나간다. 생명나무의 잎은 만국을 소성케(치료) 한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는 마치 줄기를 많이 가진 밴얀 나무처럼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낙원에서 무성한 가지들을 내고 달마다 열두 가지의 맛 좋은 과실을 맺을 것이다.
(밴얀 나무는 열대지방에 있는 나무로써 그 무성한 가지에서 각각 그 줄기들을 땅에 내리는 나무이다.)
3. 새 땅에서는 무엇을 볼 것인가?
(참고 성경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3~4)
(해설)
다시는 저주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말씀을 어떤 번역에는 “이제로부터 저주를 받을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다시는 상함을 받지 않으리라, 다시 타락하지 아니한다.”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나훔 선지자는 이에 대하여 “고난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나훔 1:9) 하였다.
이 모든 말은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는 우주가 이때부터는 단연코 다시는 저주함을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한 말씀이다.
요한은 구원 얻을 백성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을 것을 여기에 다시 언급하였다.
7장에서, 대환란의 폭풍이 불기 전에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천사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찍힐 것이 진술되어 있다.
13장에는 그와 대조적으로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15장과 19장에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얻게 되는 최종적인 승리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요한은 마지막 22장에서도 구원받은 백성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음 즉, 하나님의 인이 찍혀 있음을 언급하였다.
4. 그 찬란한 성에는 왜 어두움이 없겠는가?
(참고 성경절)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계 22:5)
(해설)
하나님의 성에는 밤이 없을 것이다. 아무도 피곤함에 지쳐서 편히 눕기를 구하는 자가 없겠고 또 그리할 필요도 없다.
성도들은 항상 신선함과 상쾌함을 느낄 것이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계 22:5)
그때에는 태양광선 대신에 눈이 부시지 않는 빛이 있을 것이며 그 광도는 오히려 오늘날 정오의 밝음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가지는 무한한 축복을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표현한다.
그 같은 표현은 이기는 자 혹은 짐승과 그 이름을 이기는 자들을 묘사할 때마다 요한이 거듭 거듭하여 사용하였던 표현이다.
(계 2:26, 3:31, 5:10, 20:4~5)
구속 받은 백성은 하늘 왕이 가지는 특권을 향유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써, 구원받을 백성이 다시 회복된 낙원에서 어떠한 생활을 살 것인지를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5. 신천신지를본 다음에 요한은 어떤 말을 들었는가?
(참고 성경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 22:6)
(해설)
요한은 계시를 통해 여러 가지 사건을 다 보았고 또한 신천지의 거룩한 성과 그 찬란한 광경을 다 보았다.
계시를 보여주던 천사가 그에게 이르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라고 하였다.
천사는 요한이 지금까지 보아온 계시의 장면들이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신을 요한에게 주고자 하였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의 예언 중에서 아직 미처 성취되지 않았거나, 앞으로 장차 성취될 사건들, 곧 주의 재림과 신천 신지와 새 예루살렘 성의 건설과 같은 예언도 반드시 속히 성취될 것이라는 보장이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다.
6. 요한에게 이 계시를 전해주던 사자는 예언의 말씀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을 당부했는가?
(참고 성경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7)
(해설)
요한은 본서를 처음 기록하는 서론에서부터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으리니 때가 가까움이라.”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계 1:3)
이제 요한은 그 책을 끝맺는 말로 그 같은 말을 거듭 반복함으로 본서의 중대성을 힘있게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예언적 진리는 사람이 지어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천사, 그 종의 순서로 전달되었고 교회에 보내진 하늘의 기별이며 그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리고 지키는 자에게 특별한 축복이 약속되었음을 재확인한다.
7. 계시를 전하던 사자 (가브리엘이라 부르는 천사임)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여야 할 것을 어떤 친절한 말로 가르쳐 주었는가?
(참고 성경절)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 22:8~9)
(해설)
천사가 하나님의 교회의 마지막 승리를 요한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으며 실로 장엄하였다.
요한이 교회의 최종적인 승리와 구원을 보는 순간, 그 영광스러운 광경에 감동되어 공경할 마음이 생겨 그만 천사의 발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곧 그를 일으켜 부드러운 말로 “그리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 후에 천사는 장려하고도 찬란한 천성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요한은 황홀함에 억눌려 천사의 책함도 잊어버리고 또 그 발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였다.
그는 다시 부드러운 말로 책망하였다. 천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을진대, 어찌 사람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보상의 날
8. 천사는 요한에게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무슨 이유로 인봉하지 말라 하였는가?
(참고 성경절)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0)
(해설)
요한은 천사로부터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라는 지시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 말씀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단 12:4)라고 다니엘에게 지시한 말씀과 대조가 된다.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인봉되어야 할 책이고, 요한계시록은 인봉되지 말아야 할 책이다.
한 책은 종말의 때를 예언한 예언서(단 12:4)이며, 다른 책은 그 예언을 공개하는 계시서이다.
다니엘이 기록한 종말에 관한 예언은 요한계시록에 의하여 개봉되고, 해석되며, 성취된다.
마지막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니엘의 예언은 개봉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열린 계시서이다.
9. 그리스도의 말씀을 요한에게 전하던 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 중 어떤 엄숙한 선언을 전하였는가?
(참고 성경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 22:11)
(해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이 선언은 그리스도가 친히 하실 선언이다.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은 영원한 불 못에 빠지게 된다는 마지막 기별이 끝마쳐지는 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각자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자들은 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짐승의 편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하시던 중보사업을 끝마치신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중보하시던 향을 던지시면서, 그의 두 손을 높이 드시고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리하여 전 인류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입고 있던 제사장 옷을 벗으시고 당당한 왕의 옷을 입으신다.
그분께서는 만왕의 왕의 당당한 위엄으로 이 땅에 재림하신다.
그는 엄숙하게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라.” 선언하심으로써, 이제로부터 불의한 자가 다시 거룩해질 수 없고 거룩한 자가 불의해지는 일이 없음을 선언한다.
10. 마지막 선고에 이어 어떤 다른 사건이 따를 것인가?
(참고 성경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해설)
마지막 선고가 있은 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모아 하늘에 준비한 집으로 영접하여 데려가시려고 재림하신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충성하였던 자들을 환영하여 “주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마 25:21,23) 하신다.
구주의 즐거움은 그의 고민과 굴욕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을 영광의 왕국에서 보시는 것이다.
11.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나중이신 주께서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가 생명나무에 나아갈 자격을 가질 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참고 성경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 22:13~14)
(해설)
주께서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라야 하늘 도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란 말은 무슨 뜻인가?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이보다 분명한 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이 말씀은 헬라 성경에도 “계명을 지키는 자.”라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라는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15절에는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법행위들이 열거되어 있다.
요한 계시록 전체를 통하여 성도의 품성과 행위가 크게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이 성도의 행위에 의존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도의 품성과 행위는 그들 심령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표시이며 그들의 믿음이 참됨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12. 어떤 사람들이 문들을 통하여 생명나무로 나아가지 못하고 성 밖에 있을 것인가?
(참고 성경절)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 22:15)
(해설)
이것은 새 예루살렘 성밖에서 사단과 함께 서있는 악한 무리의 속성을 표현한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 천년이 지나 둘째 부활에 살아나는 악인이 하늘로 쫓아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다보면서 그 성을 쳐서 빼앗으려고 그 성밖에 모여드는 악인의 품성에 대한 서술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악의 보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 못에 죽어 영원한 멸망 곧 둘째 사망에 들어갈 것이다.
사랑의 초청
13.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계시를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는 이는 누구라 하였는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 22:16)
(해설)
본서가 그리스도의 계시인 것은 1장 1절 서론에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예수님께서는 여러 교회를 위하여 사자를 보내어 증거하게 하신 것임을 친히 말씀하시고 또 당신은 다윗의 뿌리요 가지며 광명한 새벽 별임을 말씀하였다.
예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조상을 만드셨으니 다윗의 뿌리가 되며 그가 다윗의 후예로 육신을 쓰고 탄생하셨으니 그 가지가 되며 또한 하나님 보좌의 광명한 새벽 별 곧 천사장의 지위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14. 계시록 마지막 장을 거의 끝마치려 함에 있어 어떤 사랑의 초청을 모든 사람에게 보냈는가?
(참고 성경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7)
(해설)
성령께서는 오래전부터 우리 모두에게 “오라”라는 초청을 보내고 계신다.
또한, 신부도 우리에게 “오라”라는 초청을 보내고 있다. 이 신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이미 앞 과목에서 연구한 대로 신부란 “새 예루살렘성”을 두고 한 말이다.
거룩한 성의 영광과 화려한 것을 보고 거기에 들어가 영원토록 행복을 누리라는 초청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성에 들어오라는 초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 성은 금강석과 각색 보석으로 쌓았고 각색진주로 문을 세우고 황금을 깔아 놓은 거리는 우리를 오라고 부른다.
금으로 만든 거리를 밟고 영원한 봄과 같은 향기롭고 상쾌한 들을 걸어 다니는 발에서 모든 발에서 모든 더러운 것이 제거되었고 모든 피곤은 떠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성과 생명강을 바라보는 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눈물을 씻기실 것이다.
하늘의 기뻐 뛰노는 하늘 합창소리는 영원히 슬픈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다.
결코, 살아져 없어지지 않는 영광에 대해 얼마나 복된 생활인가, 이런 곳으로 오라고 성령과 신부는 우리를 초청하신다.
우리는 다 그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15.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 사람에게 어떤 주의의 말씀을 하셨는가?
(참고 성경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해설)
요한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무엇이나 가감하는 자는 생명나무를 따먹고 그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경고한다.
요한은 그의 기별이 수난과 위기에 처한 교회들과 그리고 앞으로 오는 여러 시대 동안의 그와 유사한 형편 가운데 있을 교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특별한 계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특별한 말씀과 구원을 갈구하는 교회들에게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의도하신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를 희망하였다.
또한 요한은 세상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광 가운데 재강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한 진리의 빛에 대하여 전적으로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가기를 소원하였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기별이 잘못 왜곡되지 않기를 바랐다.
의도적으로 그러한 일을 행하는 자는 구원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매우 엄중한 그리스도의 경고가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다.
16. 이 모든 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다시 어떤 귀한 허락을 주셨는가?
(참고 성경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해설)
요한은 22장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세 번째로 여기에 기록한다.
그의 오심이 너무나 중요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그 말씀은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되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요한의 마음은 재림의 소망과 기쁨으로 넘쳤다.
요한은 이상 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멀리 바라보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응답하였다.
수난 중에 있는 교회들에 보내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기별은 그 책 머리말과 같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였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현재 환란 가운데 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구속의 경륜 가운데 있는 일이었음이 보여졌으며 생명의 면류관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권면이 주어졌다.
참믿음을 위하여 고투하는 신자들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재림의 소망만이 유일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것은 초대 교회의 대 희망이었으며 또한 오늘 우리의 간절한 희망이다.
17. 어떤 기도와 축사로 요한계시록의 모든 허락을 끝마쳤는가?
(참고 성경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1:21)
(해설)
요한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하는 인사로 그의 글을 끝맺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요한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참으며 이겨낼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그 위대한 소망의 실체를 알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까지 그 자신과 그 같은 희망을 가진 모든 시대의 교회를 붙들어 주시는 무한정의 그리고 무진장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요한계시록과 성경전서는 예언의 증언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끝났다.
예수님의 은혜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
예수님의 은혜는 오늘 나의 부족, 나의 연약, 나의 불완전, 나의 불순과 불의를 하늘의 의로 변화시켜 주고 감싸 주기에 충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다시 나타나시는 날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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