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찾는 방법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는 굉장한 보화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고 찾을 수 없는 엄청난 보화를... 그것은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또 찾아 소유할 수 있는 귀중한 보화이다. 그 보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진리이다. 우리는 비유에 나오는 사람처럼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성경의 진리를 찾아야 한다. 진리는 찾는 사람에게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아주 귀중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놀라운 진리를 함께 찾아내어보자.
물론 성경에 나오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들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바로 이 책자에서 다룰 주제야 말로 정말 중요한 주제일 뿐만 아니라, 이 마지막 말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다 적용될 심각한 진리가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제 함께 연구할 문제는 앞으로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슈가 될, 아무도 이 문제를 회피 할 자가 없는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앞으로 곧 이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핫 이슈가 될 것이다.
현재 이 시대에서 우리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이슬람의 테러 집단들에 대한 이슈이다. 또 자주 일어나는 재해들도 심상치 않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세상은 최고의 관심을 끄는 일이 생길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관심이며, 그것으로 온 세상의 시선이 집중되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다음의 이유를 읽어 보자.
앞으로 이 지구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것보다 더 엄청난 천연재해들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로서,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재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될 것이며, 더 큰 규모의 지진, 해일 등 가공할 만한 천연재해들과, 또한 엄청난 무기와 폭탄들의 폭발 등의 인재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무신론자도 막상 죽게 될 때에는 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가? 마지막 환란의 때가 오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과 또한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호의를 다시 회복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 떨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자비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눅 21:15,16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환란이 오기 전에 그냥 살짝 휴거 되어 하늘로 먼저 올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밝혀두건대, 비밀 휴거의 가르침은 성경적이 아니다. 의인과 악인들이 다 함께 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의인은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을 것이고, 악인들은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사람은 휴거문제를 다룬 책자에 대해 생애의 빛으로 문의바람)
1. 마지막에 받는 표, 인
곧 다가올 마지막 환란의 때가 되면 무엇이 하나님의 참된 명령이며, 무엇이 인간의 명령인지를 구분하려는 심각한 분위가 생기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며, 그 때에 가서는 우리의 직장과 돈과 이 세상의 쾌락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 읽어나가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자, 그런데 여러분들이 먼저 한 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말하기를 구원 받는 자들은 누구나 다 이마에 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상한 말이지 않는가? 왜 이마에 인을 받아야 하는가? 무슨 도장을 받는 것인가? 또한 성경은 구원 얻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마에 멸망의 인을 받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누구나가 다 이마에 모종의 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인, 아니면 멸망의 인을... 그것은 눈에 보이는 인이 아니고 하나님과 찬사들만 식별 할 수 있는 인이다. 심판이 인을 받은 자들의 위를 뛰어 넘어 지나갈 것이다. 출애굽 당시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에는 심판의 천사가 지나갔던 것처럼... 이마에 받는 인은 그 사람의 마음의 태도와 그 사람의 됨됨이, 곧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낸다. 앞으로 당신이 어떠한 인을 받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다음에 설명할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함께 계속 연구해 보자.
성경 계시록 13:14?17에는“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는 말씀이 나온다.
앞으로 멸당할 자들이 받는 인인 짐승의 표가 모든 사람에게 강요 될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대다수가 앞으로 이 표를 받게 될 것이며,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또 다른 성경말씀 계 14:9,10은“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말하고 있다. 곧, 성경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불로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그러나 구원 얻는 자들이 받는 인이 따로 있다. 성경 계 22:3~5절을 보자.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구원 얻는 자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의 인이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마에는 구원의 표인 하나님의 인이, 멸망당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표의 인이 찍힐 것이다.
구약 성경에도 이러한 표상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3~6).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성경은 구원 얻는 자들이 받을 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1?4). 성경은 지금 우리가 인치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사방 네 바람이 놓이게 되면 더 엄청난 천연재해와 인간이 만든 재해들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천사가 사방바람을 놓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 온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닐,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재난이 이 땅에 올 것이다. 그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만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자들만 환란을 통과하여 구원 얻게 될 것이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우리가 거듭날 때에 받는 성령의 인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하늘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거듭남과 성령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그것을 인이라고 부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즉 우리가 앞으로 환란을 통과하기 전에 받아야 할 인은 그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지막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인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인정을 받게 되는 인이다. 성경 이사야 26:20,21에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세상에 심판의 재앙이 떨어질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인이란 무엇인가?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이해 할 수가 없다. 도대체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성경 중에는 하나님께서 당신 손으로 직접 써주신 부분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대필하여 쓰게 하신 것이므로 이 책은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직접 써서 주신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시내산에서 직접 당신의 손가락으로 써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십계명은 불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십계명 안에, 하나님이 누구시며 또,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려주는 도장같은 계명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을 십계명의 가장 중심부에 기록하여 두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셨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넷째 계명이다.
십계명은 두 돌비에 기록되었는데, 첫 번째 돌비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할 네 계명들이, 두 번째 돌비에는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 적혀 있다. 첫 번째 돌비에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첫째에서 셋째 계명이 있고, 그 다음에 네 번째 계명이 있는데, 이 네 번째 계명이 바로 십계명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네 번째 계명은 첫 번째 돌비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들과 두 번째 돌비에 기록된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계명들 사이 바로 그 중심부에 있는 계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게 되는 아름다운 계명이고, 또 이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들의 표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또 이웃을 사랑 하는 마음속에서 쉬는 참된 안식을 표시하는 계명이다.
이 넷째 계명의 정신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온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넷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 넷째 계명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함께 읽어 보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만일 하나님께서 이 네번째 안식일 계명을 주시지 않았다면, 이 십계명이 불교의 계명인지, 이슬람교의 계명인지, 아니면 유교의 계명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 네번째 계명 안에서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를 통치하고 계신 하나님인가 하는 내용을 발견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의 도장, 인에는 그의 이름과 다스리는 영토와 그의 타이틀, 즉 직함이 새겨져 있다. 이름; 조지 부시, 직함; 대통령, 영토;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마찬가지로 넷째 계명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여호와”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분이 누구이신가? 그분은 창조주이시다. 어디를 다스리시는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넷째 계명에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제 칠일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개인적인 일을 하지 않는 거룩한 날로 삼으라고 말씀 하셨다. 왜 그저 일주일에 아무 날이나 하루를 지키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일주일 중 제 칠일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분의 창조 받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시로 그 날을 지키라고 하셨다. 즉,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우리가 그분의 모든 말씀을 순종한다는 표시와 인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4. 시금석이 되는 십계명
십계명은 마치 선악과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 있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는 하나님의 계명이었다. 생명나무와 다른 과실들은 다 먹고 즐겨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는 따먹지 말았어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행복과 질서를 위하여서 지키는 것이지만, 또한 아울러서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존경과 충성심을 나타내는 테스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살고, 어기면 죽게 된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다. 천연계에도 법칙이 있다. 불 속에 들어가면 죽는다. 별들이 도는 궤도에도 법칙이 있다. 비행사가 관제탑의 명령을 듣고 착륙하는 것은 죽고 사는 일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에 적당히 하라고 할 수가 없다.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 6:25).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5,16).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생명이 오고, 불순종하면 사망이 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이 세상의 또 다른 선악과와 같은 것이다. 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교회인 여자의 남은 자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시록 14:12절을 보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또 계시록 12:17 에는,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쓰여 있다. 마귀가 미워하는 하나님의 참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교회는 교파나 교단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곧 성령의 은혜로 하나로 묶어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안식일 계명을 포함해서 모든 계명을 지키는 특징과 성품을 가지고 하나로 연합 되게 될 것이다.
5. 넷째 계명의 중요성
분명히 당신은 지금 이 책자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질문들이 마음에 생기고 있을 것이다. “넷째 계명이 말하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이 과연 어느 날짜를 말하는 것입니까?”또, “유대인들이 아직까지 여전히 지키고 있는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만일 토요일이 진짜 제칠일 안식일 이라면 왜 이렇게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즉 주일을 지키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과 박사들이 그것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또 다른 질문, “옛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혹시 달력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옛날의 제 칠일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날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아무 날이나 한 날을 지키면 되지 무엇 때문에 고지식하게 한 특정한 날만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등등의... 자, 이제 이러한 질문들에 하나씩 답변해 나가 보도록 하자.
A.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은 과연 어느 날인가?
눅 23:52?56,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예수께서 안식일 예비일 날, 즉, 안식일 바로 전 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명대로 가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눅 24:1~6에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쓰여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하셨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교회들이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키는 습관이 Easter Sunday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 바로 전 날이 안식일, 지금의 토요일이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안식일에는 무덤 속에서 쉬시고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 가는 이유가 예수님께서 그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안식을 지키라고 말하지 않는다. 창조의 기념일로서 제 칠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표이다.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앞의 성경절에 나오는 “주의 날”을 사람들은 일요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일요일에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때는 약 AD 100년도였고, 그 때에는 일요일을 지키는 습관이 교회에 전혀 없을 때였다. 기독교회의 총회인 라오디게아 총회가 AD 364년도에 가서야 공식적으로 안식일을 제칠일인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꾼다고 공포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에서 떠나가는 배도하는 일이었다.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놀랍지 않은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곧 그 예언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은 안식일인 것이 확실하다. 막 2:27,28,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주의 날은 제 칠일 안식일이며, 일요일이 아니다.
B.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놀라운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먼저 데살로니가 후서 2:3?8을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게 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사도 바울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으로 기대하고 살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이 먼저 이루어지는 일이 있은 다음에 예수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해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것이다. 먼저, 교회가 배도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배도(apostasy)”는 “falling away from the truth”, 즉, “진리에서 떠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 다음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일이 생기게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교회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 보다 인간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 있게 될 것이라고 미리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사람. “lawless one” 즉, “하나님의 법이 없는 자”를 말한다.
이 불법의 사람이 하나님 위에 올라 숭배를 받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전, 즉 하나님의 율법 곧 계명이 있어야 할 곳에 자기 자신을 두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자, 이것은 중세기에 교황권이 한 일에 대한 예언이다. 다음의 말들을 들어 보라. 다음은 천주교회 백과사전에 기록된 "교황"에 대한 정의이다.
*“교황은 너무 존엄하고 높기 때문에 단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 레오 13세의 말 중에서 발췌).
* "교황들은 이 지구상에서 전능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1894년 6월 20일 교황의 교서 중에서.
* "교황은 하늘의 왕, 지상의 왕, 연옥의 왕으로서 삼층 면류관을 쓴다." Feraris 저, Prompta Bibliotheca 제6권, p.26 (바티칸에서 발행한 공식 서적)
* “교황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그는 육신의 베일 속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1895년 7월호, The Catholic National 지에서.
*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의 최상권에 관한 모든 내용은 모두 다 교황에게도 적용된다." Bellarmin, Authority of Councils, 2권 17장.
* "교황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 중 왕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만일 천사들이 잘못된 신앙을 가진다면, 그들을 심판하고 파문에 처할 수 있다" F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에 있는 Article on the Pope.
* "우리(교황들)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7/20, 1894.
* "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의 하나님이시며, 왕 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Prompta Bibliotheca, vol. VI, p. 25?29.
6. 넷째 계명의 변경
얼마나 바울의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 되었는가? 교황권은 지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 이 로마교회의 교황의 세력이 바로 안식일을 제 칠일에서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한 세력이다. 이것에 대한 예언이 단 7:25에 나와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성경은 “그가 때와 법을 바꾸고자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이 법은 성경의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이며, 그 중에서 때라고 표현된, 다시 말해서 시간이 포함된 계명인 안식일 계명을 바꾼 것을 가리킨다.
또 이 세력이 한때, 두 때, 반 때, 즉 3년 반 동안 세상을 지배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세기에 있었던 1260년 동안의 핍박 기간이 성경에 벌써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기간 동안 많은 이교 종교의 오류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진리가 혼동되는 일이 생겼다. 천주교회의 영세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교리 문답집에 있는 10계명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10계명의 내용이 다른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천주교회의 교리 문답집에 있는 십계명에는 둘째 계명이 빠져 있다. 왜인가? 그것은 그들이 많은 우상들을 교회 안에 갖다 놓았기 때문이다. 바울 상, 베드로 상, 성자들의 우상들, 특히 성모 마리아 상 등등... 그들은 거기에 경배하고 입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둘째 계명이 빠졌으므로 셋째 계명을 둘째로 넷째 계명을 셋째로 올렸고, 그리고 열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서 모자라는 한 계명을 채워 놓았다. 그리고 안식일 계명을 줄여서, “주일을 지키고”라고 써 놓았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가톨릭 사전 4권, 153에 보면, "가톨릭교회는 안식일을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서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시킨 후,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고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명하였다"고 쓰여 있다.
* 1868 년 Catholic Press, 225; “천주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제 칠일 안식일 준수에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쉬도록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개신교회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회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보이는 표가 된다.”
* Saint Catherine Catholic Church Sentinal, May?21,1995;“교회가 가장 획기적이고도 과감한 일을 감행한 것은 제 일세기에 있었다. 그것은 거룩한 날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한 일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어떠한 제시를 따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교회의 권위를 가지고 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교인이 되어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논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Letter, Oct. 28, 1895 from C. F. Thomas;“물론 우리 천주교회는 날짜를 변경한 것이 우리 교회가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그 행동이 바로 천주교회의 권한과 종교적인 일들에 대한 권위를 나타내는 표이다.”
위의 글을 읽어 보아서, 우리는 다니엘과 요한 계시록의 짐승의 표에 대한 예언이 말하고 있는 짐승의 세력은 로마 교회의 교황권의 세력을 말하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짐승의 세력, 곧 불법의 사람, 즉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표는 일요일인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일요일을 지키면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권한이 교황권에게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 된다.
앞으로 짐승의 표의 환란이 올 때에 일요일 준수냐 아니면 안식일 준수냐 하는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앞으로 오는 환란 때에, 교황의 권한을 인정해 주면서 일요일을 지키는 자들은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되고, 그렇게 믿지는 않지만 핍박에 못이겨서 할 수 없이 따르는 자들은 손에 표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때(일요일을 지키지 않으면 핍박을 받는 때)에 일요일을 지키는 것, 그 때에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짐승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짐승의 표가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의 권위에 굴복 할 것인가?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교회의 권위에 굴복할 것인가? 누구에게 복종할 것인가 하는 투쟁이 곧 일어나게 될 것이다.
6. 안식일을 변경한 이유
중세기의 기독교회가 안식일에서 일요일에 예배드리도록 날짜를 바꾸게 된 동기는 이교도들을 기독교회로 끌어 들이기 위한 목적이 많았다. 일요일은 Sunday,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예배일이었다.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번영하게 되었고 반면에 영적으로 깊이 타락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의 세력을 크게 만들고 이교도들이 쉽게 교회에 들어오도록 만들어서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서 성경의 교리들을 타협하기 시작하였고, 교회 안에 우상들을 들여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교도들을 위해 안식일을 바꾸어 태양의 숭배일로 변경해 주었다. AD 321년도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에 있는 기독교회의 지도자들과 합하여서 “일요일 날에는 모두가 다 쉬라”고 하는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강압적으로 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도록 했다.
그 때 내린 제일 첫번째 일요일 휴업령의 명령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모든 법관들, 각 도시의 주민들, 모든 상인들은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쉴 것이다.”놀라운 일이 아닌가?
또 한 가지 이유는 그 당시에 로마 제국 안에서 유대인들이 많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로 지목을 받았고, 그래서 기도교인들이 자기들은 유대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일요일에도 예배를 드리는 이상한 풍습을 들여오기 시작한 것도 이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이나 목사들 가운데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안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교회의 전통과 습관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눈이 가리워져서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성경 해석들과 교회의 전통에 얽매여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였던 사실을 몰랐다. 그것만 보아도 편견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또한 엘리야 시대에도 온 교회 전체가 잘못된 가르침에 속고 있지 않았는가! 성경 역사는 다수가 항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아무리 많은 학식이 있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말은 진리가 아니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옛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메시아 왕이 어디에 태어나셨느냐고 물었을 때에, 교회 지도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 않았는가! 막 7:7?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7. 십자가 후의 안식일은?
정말 성경상의 안식일이 토요일일까? 달력이 혹시 바뀌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다음에도 안식일 준수가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 되어 왔는가? 우리가 단순하게 여러 나라들의 요일을 부르는 명칭들을 살펴만 보아도 그것은 분명해 진다. Italy 말로 토요일은 Sabbato(Sabbath)이다. Spain 말로는 Sabado이고, Portugal 말로는 Sabbado, Russia 말은 Sabbota, 그리고 Poland 말로는 Sobota이다. 이 말들은 다 안식일이란 뜻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 달력을 한번 개정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일제도는 바꾼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1582년도 10월 달에 교황 Gregory 13세가 그 당시까지 사용하여 오던 Julian 달력, 즉 Julius Caesar 가 만든 달력을 개정하였다. 태양의 움직임에 대한 시간 착오 때문에 달력에서 10일을 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1582년 10월 5일을 15일로 개정했는데, 4일은 목요일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금요일을 5일로 하지 않고 15일로 하였으므로 요일의 순서는 바뀐 적이 없다.
성경은 예수님도 안식일에 교회에 가셨다고 말한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자기 규례대로”, “그렇게 늘 해오시던 대로”, 이것은 유대인의 습관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마 24:20,21,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예수께서는 십자가 이후에 있을 미래의 환란을 말씀하시면서 여전히 안식일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에도 사도들이 안식일을 준수한 기록이 성경에 있다.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바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일까?
다음의 성경절을 또 보자. 행 16:12?14,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에 그 곳은 교회가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강가에 나가서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 예수님도 안식일 지키셨고 사도들도 안식일을 지켰다. 중세기에도 진짜 성경의 안식일을 지켜 온 많은 그룹들과 교회들이 그 맥을 이어 왔다. 사 66:22,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8. 왜 꼭 제 칠일인가?
왜 아무 날이나 일주일에 하루만 지키면 되는 것이지 왜 꼭 제 칠일만 지켜야 하는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이다. 왜 도적질하지 않는가? 왜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가? 왜 탐내지 말아야 하는가? 그저 도덕적으로 안 좋으니까? 아니다. 그것은 죄이기 때문이다. 계명을 어기는 것이 죄이며, 하나님께서 금하셨으므로. 안식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셨으니까 지켜야 한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듯한 명령이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아닌가? 그는 아무리 마음이 괴로워도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다. 자기 아들을 죽여서 제사로 드리라는 명령까지도 그는 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순종하며 따라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이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내가 이제 알겠다.”고 하셨다. 또한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당신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셨으니까 지켜야 한다. 우리의 편리대로 믿으려면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가? 기도는 왜 하며 헌금은 왜 드리는가?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충성의 표이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셨다. 창 2:2,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하나님께서 특히 제 칠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토요일도 다른 날과 꼭 같이 24시간이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특별하게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셨다. 그 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쉬는 날이며, 영적으로 재충전 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성령의 은혜를 듬뿍 받는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시가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유대인들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이 지구를 창조하신 후에 제일 먼저 만드신 제도가 안식일 제도이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을 위한 날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안식일을 잊어버릴 것을 아시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요즈음은 교인들은 교회 가서 한 두 시간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안식일을 다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날에는 사사로운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배드리는 일과 하나님의 일만을 하라고. 사 58:12~14,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성경은 참 안식일 준수를 개혁할 자들이 앞으로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표징, 싸인이라고, 인이라고 되어 있다. 이 연구를 처음 시작 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언급 한 것을 상기해 보자. 겔 20:11,12,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표이며 인이다. 겔 20:19,20,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9. 믿음과 충성의 표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인이다. 물론 계명을 지키는 공로로 구원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그 믿음을 확증한다.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들을 무시하는 자들이 어떻게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하며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마 7:20~23,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성경의 마지막 책 의 마지막 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계 22:14,(킹 제임스 성경)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안식일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적인 경험의 외적 표시이다. 롬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마음 속에 있는 의로운 경험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 할례이다. 할례는 죄와 우상을 잘라내버리는 거듭남의 경험의 표이다. 그러나 그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표였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표는 안식일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믿음의 경험의 외적인 표현이요, 도장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실제로 칠일 동안 말씀으로 창조하신 사실을 믿는 것, 그리고 그 창조의 능력으로 나 같은 죄인도 다시 재 창조하시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쉬는 경험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추수 할 때도 안식일을 지키고, 직업을 잃어버리게 되거나 망하게 되거나 어떠한 세상의 불이익을 당하게 되더라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그 분의 능력 안에서 쉬는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어떤 반문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안식일에 대하여 폄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특정한 날짜를 강조하느냐”고 반문 한다. 만약 십자가 이후에 안식일 계명이 폐했다면, 왜 다른 나머지 아홉 계명들은 지키고 있는가?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계명도 폐했는가? 안식일 같은 그 중요한 계명이 바뀌었다면 왜 성경에 한 마디도 기록하시지 않았는가? “안식일 문제로 폄론하지 말라”는 말씀의 문맥을 읽어 보자, 그리고 그 오해를 풀어 보자.
골 2:14-17,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법은 의문의 증서, 즉, 모세의 율법이다. 그것은 제사 제도나 절기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그러한 것들은 왜 더 이상 필요가 없는가? 그러한 것들은 예수께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장래에 있을 것에 대한 그림자들이기에 상징적인 의미로 지킨 것이었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는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킨 절기였고, 요제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실 날자와 그 의미를 알게 하기 위하여 지킨 절기였다. 그러나 실제이신 예수께서 오신 다음에는 절기들은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2장의 말씀에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폄론하지 말라고”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헬라말로 복수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안식일들”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절기 안식일들, 절기를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레 23장을 읽어 보면 거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절기들의 엄숙함을 위해서 절기 안식일들을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바울 당시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절기도 계속 지켜야 하며 절기 안식일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의 율법들은 십자가 이후에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절기 안식일들에 대하여 더 이상 폄론하지 말라고 바울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그림자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을 뒤돌아 보도록 가리키는 제도이다. 절기 안식일들과 다르다. 이 문제는 성경 말씀의 문맥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오해하므로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일요일에 집회한 사실을 대면서 일요일 준수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한 대목들을 다 찾아보라. 그러한 언급들은 거의가 다 토요일 밤에 있었던 일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성경의 계산법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되어 있다. 성경상 하루는, “해 질 때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해 질 때까지”가 하루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토요일 밤을 안식 후 첫 날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일요일 날 혹시 모였더라도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것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11. 하나님의 인과 마지막 투쟁
계 13:15-17,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이 짐승의 표의 환란의 상징은 다니엘서에서 빌려 온 표현이다. 이것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겪은 경험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신상을 세워 놓고 거기에 절 하도록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잘못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니엘의 친구들이 그 때 그 신상에 절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계명이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 하나님의 참 안식일과 일요일을 준수하는 문제 사이에 큰 투쟁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우상이 서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하는 명령이 내릴 것이다. 다니엘 3장의 경험은 영적으로 다시 반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인간의 계명 사이에 투쟁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안식일을 지키며 일요일이 하나님의 안식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충성스럽게 서게 될 것이다. 앞으로 큰 재난들이 올 것이다. 각 나라들이 비상시기를 선포 할 것이며, 다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호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일요일을 거룩히 지키자는 운동을 제기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성경의 참된 안식일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침례 요한처럼 담대하게 안식일에 대하여 증거할 것이다. 그 때 큰 핍박이 오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는다.
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는가? 이마(뇌의 전두엽 부분)는 우리의 지성과 양심과 의지, 판단력, 성품이 있는 곳이다. 우리의 습관과 사상이 이 이마의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이 이마 부분에 꼴 지워져 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적당히 내 편리대로 믿는 쭉정이 그리스도인인지가 이 이마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이마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만 충성을 다 하는 성품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만 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곧 큰 환란이 올 것이다. 사방 바람들이 놓여진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만이 천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계속적인 순종과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품성이 꼴 지워져 있는 사람들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인을 받은 자들이 마지막 환란을 통과할 때에 마귀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인이다.
안식일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들의 믿음의 표다. 온 세상이 이해하지 못 할 때라도 진리대로 진실되게 서는 자들에 대한 표징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던 그러한 믿음이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참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킬 마음이 없는가?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인을 받는 독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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