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College :: 제30호 짐승, 용, 그리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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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배우려 함
Jangjaedang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잡이 제30호

짐승, 용, 그리고 여자

차례
제1부. 짐승과 그의 배경
제2부. 용과 여자
제3부. 짐승의 표와 그 숫자
제4부. 성경 예언에 나타난 미국

제1부. 짐승과 그의 배경

두려운 경고

성경에서 마지막 시대를 위한 가장 두려운 경고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14:9-10에 나타나 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worship, 예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이 성경절의 내용은 성경의 다른 곳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비추어 볼 때에 너무나도 대조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무서운 두려움을 주고 있다. 이 성경 절은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진리와 사랑을 계속해서 거절하는 자들로부터 거두어지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의 자비로 인하여 거의6000년 동안이나 지연되어 왔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권위에 대한 인류의 반역과 죄악의 정도가 그 한계를 채우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간섭하시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을 그토록 분노케 하는 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성경 절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말세의 마지막 사건 가운데에는 짐승에게 잘못된 충성을 바치면서 따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참 하나님을 경배(worship, 예배)하는 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을 경배(worship, 예배)하는 무리이다. 온 세계가 둘로 나누어지는 배경에는 누구를 경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깊이 관련되어있다. 또한“경배”라는 말은 종교계에서만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무리뿐만 아니라, 짐승을 경배하는 무리에게도 종교적인 사람들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두 개의 커다란 무리로 나누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4:9-11에서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에 대하여 묘사한 후에, 곧 이어서 1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하였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바로 이것이 짐승을 따르는 자들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 있는 분명한 경계선이다!
온 세계가 두 무리로 나뉘는 것이“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사도 요한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무리를 설명하면서,“저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라. 또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나머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로마서 6:16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가장 고결한 충성심은 순종이라는 분명한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결국, 지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십계명을 불순종함으로써, 적 그리스도의 가짜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으로 어떤 한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을 경배하는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에는 삶과 죽음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사실은, 수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짐승의 표와 관련된 요한계시록14장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의 예언에 나타난 심각한 경고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목사들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제대로 하나님의 경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단순히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게 보내는 경고의 글로 해석됨으로써, 신자들에게 혼돈을 야기시키고 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한계시록을 봉해진(덮혀진)책으로 취급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의미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약속이 요한계시록 서두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사단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전개되는 마지막 대 쟁투에 대한 씨나리오를 요한계시록에서 탐구하기 전에, 먼저 대 쟁투에 참가한 두 투사(그리스도와 사단)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자.

놀라운 능력을 지닌 두 투사

커다란 투쟁의 클라이맥스(정점) 즉, 온 세계가 두 무리로 나누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종점에서 일어나지만,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의 역사는 거의6000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대 쟁투는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루스벨(사단)의 반역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위치를 시기했던 한 천사에 대한 이야기가 구약 성경에 여러번 기록되어 있다. 이사야는 그 아름답고 영광스럽던 존재의 반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Lucifer, 루스벨 - 영어 성경)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이사야14:12-14

한 천사장의 이기적인 반역의 씨앗은 신속하게 퍼져서, 다른 천사들의 충성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하늘 천사들의 삼분의 일이 루스벨의 불만족에 가담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대 쟁투는 시작되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계 12:3,4. 이렇게 시작된 대 쟁투가 어느덧 육천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으며, 이제는 세상의 종말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누구를 지지하고 경배할 것인가에 대한 최후의 결정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하늘에 반역이 생기자 즉시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 전쟁의 결과로 루스벨이라고 불리웠던 천사장과 그에게 가담하였던 무리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있었던 대 반역의 사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요한계시록 12:7-9.

계명성(star of the morning, 새벽 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루스벨(Lucifer) 천사장이 타락하여서 사단이 되었기 때문에, 사단(Satan)이라는 단어에는“대항자”(adversary)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사단과 하나님과의 대 쟁투는 하늘에서 지구로 옮겨졌으며, 말세에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 함으로써 그분을 따르든지, 또는 불순종 함으로서 반대할 것인지를 각자가 개인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온 세상은 두 무리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이 같은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 쟁투는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충성에 의해서 반역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율법(계명)에 결정적으로 도전하고 거절함으로써 대 쟁투는 종결될 것이다.

사단은 그가 하늘로부터 쫓겨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추종자인 악한 천사들과 함께 일해왔다. 악마와 같은 교활함을 가지고, 사단은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의 계획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싸워왔다. 매우 다양하고 음흉한 방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전복하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소책자를 발간하는 목적은 진리의 기초를 파괴해 왔으며, 지금도 파괴하고 있는 사단의 음흉한 흉계를 폭로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각 세대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늘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펼쳐지는 악의 세력들이 현저하게 그 정체를 드러내어 왔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에 펼쳐지는 사단의 마지막 공격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놀라운 거짓 권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공격하기 위해서 세워질 것이다. 온 세상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악한 천사들은 사람들의 충성과 결정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 강력한 방법으로 일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며, 아무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짐승의 권세가 온 세상을 압도할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사단 둘 중 어느 한 존재에 순종해야 하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요한계시록 14:9-11

삶과 죽음의 문제

이제, 두 투쟁 자에 대한 배경을 이해했으면,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펼쳐지는 대 쟁투의 마지막 국면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은 하나님의 권위를 완전하게 파괴하려고 노력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 13:1-7에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위의 성경구절이 뜻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하나님과 그분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용은 옛 뱀 즉 사단을 뜻한다(계 12:9). 짐승의 권세가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만큼 강성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들의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 받게 된다(계13:16). 이때 그 표를 받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14:9-10에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또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요한계시록 15:1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재앙과 고통이 요한계시록 16장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재앙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거론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과 죽음이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짐승의 정체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연구해야만 할 것인가?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연구 해야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떠한 추측이나 상상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해 해야만 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자신의 운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이나 그 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목사들은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짐승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짐승의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하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짐승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해 주셨다. 짐승에 관한 문제는 우리의 생과 사를 결정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짐승의 정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냥 덮어두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은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분들이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 불에 던지울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나쁜 것이긴 하지만,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구태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고하시는 것이다.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도 역시 피할 수 있다.

상징적으로 묘사된 짐승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짐승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짐승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그가 마지막 시대에 강요하게 될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3:1-7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은 매우 이상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러 가지 동물들의 복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상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표범의 몸과 사자의 입과 곰의 발을 가지고 있는 동물을 본적이 있는가? 성경의 예언은 상징과 표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표현된 짐승을 통하여 어떤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추측이나 상상을 통하여 짐승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성경 속에는 예언을 풀 수 있는 열쇠들이 이곳 저곳에 담겨 있다.

짐승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은 모두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짐승이 나타나는 장소로 표현된 물(바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경은 성경 자체가 설명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요한계시록 17:15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이와 같이, 예언에 나타난 상징적인 표현인 물(바다)을 백성 또는 사람들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에 나타난 물의 의미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성경 속에서 설명해 놓으셨다. 성경에서 물이 예언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항상“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 그러면 짐승과 관련하여 사용된 다른 상징적인 표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짐승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 있는 다니엘서로 돌아가서 성경 절과 성경 절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성경을 연구해 본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이 둘은 손과 장갑처럼 서로 들어맞게 되어 있다. 다니엘은 요한이 받았던 계시와 유사한 계시를 보았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 요한은 구약시대에 다니엘이 보았던 계시를 이용하여 짐승의 정체와 모습을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7장에 기록된 4짐승의 예언을 이해하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4가지 짐승의 혼합 형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다니엘7:2-3에 있는 장면을 살펴보자: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다니엘은 요한이 보았던 것처럼 상징적인 바다(물)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대신에 네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물은 백성들이나 사람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짐승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성경을 설명한다는 원칙을 잊지 말라. 다니엘 7장 17절에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어떠한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할 여지없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언에서 짐승들은 국가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신뢰해야만 한다. 오늘날, 독수리가 미국을 대표하고, 곰이 옛 소련을 대표하는 짐승으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오래 전에 다니엘을 통하여 장차 세상에 나타날 국가들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짐승들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에 대한 설명을 다니엘 7:23에서 좀더 자세하게 하셨다: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만일 넷째 짐승이 역사에서 네 번째 제국을 대표한다면, 나머지 세 짐승, 즉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은 첫째, 둘째, 셋째 제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다니엘 시대로부터 오직 4개의 큰 제국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짐승에 관한 예언의 해석이 좀더 간단하고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다니엘 시대로부터 4개의 대 제국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간 역사를 되돌아 보면, 다니엘의 예언과 세계사를 잘 접목시킬 수 있다. 이들 제국의 이름이 다니엘서의 다른 곳에서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 8:20-21과 다니엘 11:2에서 제국의 이름들이 나타나있다. 또한 다니엘 2장에서는, 4개의 제국이 바벨론의 왕인 느브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거대한 신상에서 4개의 서로 다른 금속 종류로 상징되어 있는데, 그 이름은 바벨론, 메데 페르시아(메데 바사), 그리스(헬라), 그리고 로마이다. 바벨론은 메데와 페르시아의 동맹군에게 멸망 당하고, 메데 페르시아는 그리스(헬라)에게 망하였으며, 그리스는 로마에게 멸망 당했던 역사를 우리는 세계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에 나타난 4개의 제국들

(이 부분은, 생애의 빛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3호(다니엘서 2장의 금신상 예언)와 제16호(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과 작은 뿔 예언)와 제52호(다니엘서 2장과 7장 예언 종합)를 참조하시면 좀더 상세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월간지가 필요한 분들은 생애의 빛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바다에서 떠올라 오는 짐승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짐승은“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다니엘 7:4. 다니엘 2장에 나오는 신상에 관한 예언에서 바벨론은 금으로 만든 머리로 상징되었고, 다니엘 7장에서는 바벨론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도 상징되었다. 다니엘 2장과 7장에서 바벨론을 각각 금과 사자로 묘사한 것은 매우 적절한 상징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 사자에 독수리의 날개가 달려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독수리 날개는 성경의 예언에서 신속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하박국 1:6-8). 세계역사를 살펴 볼 때, 우리는 바벨론이 매우 신속한 속도로 세계를 재패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B.C. 605년부터 B.C.539년까지, 바벨론은 굉장한 세력을 온 세계에 행사하였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났다.

다니엘이 보았던 두 번째 짐승이 일어났던 것이다:“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다니엘7:5.

바벨론은 B.C.539년에 메데-페르시아(메데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순식간에 무너졌는데, 이로써 두 번째 대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곰의 모습이 묘사될 때, 몸의 한쪽이 들린 것으로 표현된 것은 메데 보다 페르시아의 힘이 강했던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두 개의 강대국은 서로 힘을 합해서 세계를 지배했었다. 곰의 입에 물고 있는 세 개의 갈빗대는 대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세 개의 지역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벨론, 리디아, 이집트) 역사의 주인이 바뀌는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B.C.331년, 메데 와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세 번째 제국이 등장했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 사건을 이렇게 표현하였다:“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다니엘 7:6. 지나간 세계 역사는 메데-페르시아의 뒤를 이어서 군림하는 초강대국으로써 그리스를 지목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의 동쪽으로부터 서쪽까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발 아래에 굴복시켰다. 표범이 가지고 있는 네 날개는 알렉산더 대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세계를 점령해 나간 모습을 상징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25세 때에 그리스의 왕이 되어서 8년 만에 세상을 정복하였으며, 인도의 간지스 강까지 가서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고 하여 강을 바라보면서 말 잔등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정복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올바로 절제하지 못했다.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술로 인한 방탕함으로 인하여 절명하였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는 알렉산더 휘하에 있던 네 명의 장군(탈러미,캇산더, 리시마커스, 셀류커스)에 의해서 4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표범의 머리가 넷으로 상징된 것은 알렉산더의 제국이 4개의 국가로 나뉘어질 것이라는 운명을 묘사한 것이다. 이로써, B.C.168년에 그리스 제국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짐으로써 예언에 나타나 있는 세 번째 짐승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무서운 네 번째 짐승

다니엘 7:23에 나오는“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라는 네 번째 짐승에 대한 예언에 우리 모두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다니엘은 그의 계시 가운데서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을 모두 보았지만, 어떤 짐승도 네 번째 짐승처럼 무섭고 놀랍지는 않았다. 성경은 네 번째 짐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다니엘 7:7

우리는 이미 넷째 짐승은 철의 군주국가인 로마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늘날에도, 로마가 잔혹한 압제와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흔적과 역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강력했던 국가도 정해진 운명의 시간이 되자, 열 조각으로 나뉘어졌던 사실을 다니엘 7:24에서 보게 된다:“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뿔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해석해 주셨다. 역사는 로마가 열개의 분리된 국가로 나뉘어졌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유럽의 북쪽으로부터 여러 부족들이 로마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해 내려와서 서부 유럽지역을 휩쓸었으며, 결국 로마는 열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A.D.476년에 로마가 멸망하게 됨으로써, 예언은 다시 한번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이로써, 다니엘 2장의 거대한 금 신상의 열 발가락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A.D.476년에 로마를 분열시킨 열 개의 부족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언, 반달, 수에비, 동고트, 서고트, 헤룰리, 롬바르드. 이들 중의 7부족은 오늘날까지 현대 국가의 형태를 유지한채 존재하고있다. 이들 일곱 부족은 유럽 지역에서 아직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현대국가로서 살아남았으나, 세 부족(반달, 동고트, 헤룰리)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

작은 뿔 = 적 그리스도 세력

지금까지 설명한 4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이해했으면, 다음에 나오는 예언으로 넘어갈 준비를 갖출 것이다. 다니엘에서 작은 뿔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자. 다니엘 7장은 작은 뿔의 정체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다니엘 7:8, 24-25는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다니엘 7:8.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 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다니엘 7:24-25. 여기서,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이 예언에 접근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 작은 뿔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에 있어서 추호의 실수나 잘못을 범하면 안 되는데, 그 이유는 작은 뿔은 역사 속에서 활동해온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니엘서의 예언가운데에 기록되어 있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9가지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에 설명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특징들은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확신을 줄 것이다. “작은 뿔”에 대해서 말해주는 예언과 역사는 우리 모두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추측할 여지를 완전하게 없애준다.

작은 뿔의 정체를 밝혀주는 9가지 증거

첫째, 서부 유럽에서 일어나는 작은 뿔
작은 뿔이 등장하는 지리적인 위치는 서부 유럽이다.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 … 이 짐승(로마제국)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다니엘 7:8,23. 천사는 다니엘에게 열 뿔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열 뿔은 이 나라(로마제국)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단 7:24.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네번째 짐승의 머리에는 열뿔이 있는데, 열 뿔은 당시에 서부 유럽에 자리잡았던 로마제국이 열 나라로 분열되는 것을 상징하였다. 그런데, 작은 뿔은 열 뿔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작은 뿔은 지리적으로 로마제국의 심장부였던 서부 유럽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둘째, 로마제국의 분열 이후에 강성해 지는 작은 뿔
작은 뿔은 열 뿔보다 조금 늦게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작은 뿔은 이미 존재하는“열뿔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열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은 언제 일어났는가? 서기 476년. 열 뿔(국가)이 A.D. 476년에 일어났으므로, 작은 뿔은 열 뿔이 나타난 잠시 후에 그 세력을 얻으면서 부상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셋째, 세 뿔을 뿌리채 뽑아 버리는 작은 뿔
작은 뿔이 강성해졌을 때, 그것은 세 뿔(세 국가)을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다니엘 7:8은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넷째, 국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작은 뿔도 열 뿔과 마찬가지로 뿔이므로 국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열 뿔은 열 왕이요” 단 7:24. “작은 뿔에는 사람(a man)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다니엘7:8. 왕권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한 사람(a man)이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다섯째, 열 뿔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다니엘 7:24. 이것은 작은 뿔이 먼저 일어났던 정치적인 왕국들과는 다른 종류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작은 뿔은 정치적인 왕권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속성을 가진 세력이라는 사실이 다음에 계속되는 여섯번째 특징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섯째, 종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작은 뿔
다니엘 7:25절의 앞부분에서 작은 뿔에 대한 또 한가지의 특성을 공개하고 있다.“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요한계시록 13:1-7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한 예언인데, 거기에는 작은 뿔의 이러한 특성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요한계시록 13:5. 성경에서“참람된”이라는 말은, 자기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누가복음 5:21)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요한복음 10:33), 이 두 가지 경우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참람 되다고 말하면서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였다(요한복음 10:30-33). 또한 예수께서 문둥병 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죄를 사하는 권세를 나타내시자 예수께 참람 되다는 말을 하였다(마가복음2:5-7). 물론 예수께서는 참람된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면, 그에게야 말로“참람”이라는 말이 적용되어야 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하나님을 대적하고 참람된 말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곱째,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작은 뿔
다니엘 7:25에는 적그리스도 세력에 대한 또 하나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작은 뿔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력을 의미한다.

여덟째, 때와 법을 변경시키는 작은 뿔
다니엘 7:25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보게 된다: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 코자 할 것이며.” 작은 뿔이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법(십계명)”을 변경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서 주의를 집중시켜 보자. 작은 뿔의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님의 법(십계명)이 작은 뿔로 상징된 어떤 인간들에 의해서 변경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1260년에 대한 예언

아홉 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의 전성기를 갖는 작은 뿔
작은 뿔에 대한 마지막 증거로서 다니엘 7:25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작은 뿔이 지상에서 정확하게 얼마나 오랫동안 권세를 누릴 것인지에 대한 예언적인 기간이 나타나 있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이상한 표현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으로써, 성경 자체에서 이 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이 예언과 동일한 예언이 같은 장의 조금 위에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말 대신에 일천이백 육십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요한계시록12:6. 이 두 성경 절을 비교해 보면, 이 두 예언적인 기간이 정확하게 같은 기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과 동일한 기간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다니엘 11:13에 나오는“몇 때 곧 몇 해 후에”라는 말씀에서,“때(time)”는“해(year)”를 의미하는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 즉 3년 반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이며, 또한 이것은3년 반을 가리키는 예언적인 기간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42달=1260일(물론, 이것은 성경의 유대력에서 1년은 360일 임을 근거로 한 것임).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 해석의 원칙을 적용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하루=일년이라는 기간적인 예언에 대한 해석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는 일년을 대표한다고 말씀하셨다:“일일이 일년이니라.”에스겔 4:6.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민수기 14:34. 이러한 법칙은 어떤 정해진 예언적 기간을 환산할 경우,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예언 해석 원칙이다. 그러므로 작은 뿔이 큰 권세를 가지고 성도를 핍박하는 기간으로 예언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42달=1260일은 모두 1260년을 의미하는 예언적인 기간 임).

A. 예언해석을 위한 3가지 원칙

1.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알고자 하는 예언의 상징적 표현이나 비유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고, 기도와 상식적인 판단을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한다.
2. 예언을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 상징인지 또는 실제인지를 전후 문맥을 통해서 구별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는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열쇠들을 성경 안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3. 성경에서 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하루는 상징적으로 일년을 의미한다. 기간에 대한 예언 해석의 정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미 성취된 과거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B. 예언에 나오는 상징과 그 의미

상징 의미 관련 성경절
여자 하나님의 교회 호세아 2:19-20,
이사야 54:1-8,
에스겔 16:8-14,
예레미야 6:2,
고린도후서 11:2,
에베소 5:21-23
한때 일년 다니엘 11:13; 4:16,32
마흔 두 달 1260년 민수기 14:34,
에스겔 4:6(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에서 하루는 일년이므로, 42달=3년 반=한 때와 두 때와 반때=1260일은 모두 1260년을 나타냄)
물 사람들, 백성들 요한계시록 17:15
바람 전쟁 예레미야 25:32-33; 49:36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29
용, 옛뱀 마귀, 사단 요한계시록 12:9
짐승, 뿔 나라, 세력, 왕권 다니엘 7:17, 24
독수리 날개 신속함 하박국 1:6-8

예언의 정확한 성취

우리는 지금까지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의 세력에 대한 9가지 특징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작은 뿔 세력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이 9가지의 특징을 모두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세력을 찾아야만 한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에 대한 9가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세력은 역사를 되돌아 볼 때에 오직 한 세력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에 대한 세력을 연구하는 사람마다 모두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밖에 없도록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을 기록해 놓으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성경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마다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정확한 이해를 소유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오직 카톨릭 교회 만이 모든 면에서 다니엘 7장에 나타난 작은 뿔의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카톨릭 교회의 과거 역사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카톨릭 교회를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로 지목할 수 밖에 없는 9가지 증거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자:

첫째 증거,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 교황권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다니엘 7:8. 서부 유럽에 자리잡았던 로마제국이 열 나라로 분열되는데, 그 가운데서 작은 뿔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카톨릭 교회가 생성된 지리적인 위치가 정확하게 예언과 일치한다. 교황권은 서부 유럽에서 발생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이태리 반도의 로마 시에서 일어났다.

둘째 증거, 로마제국의 분열 이후에 강성해 진 교황권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다니엘 7:8. 카톨릭 교회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역사적인 연대가 정확하게 예언과 일치한다. 카톨릭 교회는 로마 제국이 열 나라로 나누어진 A.D.476년 이후에 출현하였다. A.D.538년에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 교회(Church of Rome, 카톨릭)에게 막강한 권세(종교, 정치, 군사)를 주는 조서가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이로서 교황권이 세상을 지배하는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수많은 역사가들의 기록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증거,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린 교황권
“먼저 있던 뿔 중에서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더니” 단 7:8. 교황권은 로마 제국이 열 뿔(열 나라)로 분리되면서 일어난 열 뿔 중에서 특히 세 뿔(세 나라)들에게 강력한 반대를 받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아리안족인 동고트, 헤룰리, 반달족으로서 교황권의 신앙과 상충되는 아리안주의를 신실하게 믿었던 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A.D.538년, 저스티니안 황제가 포고령이 발표된 즉시, 교황권의 군대는 이 세 국가를 뿌리째 뽑아버림으로써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시켰다.

넷째 증거, 국가적인 특성을 가진 교황권
“열 뿔은 … 열 왕이요” 단 7:24. 열 뿔이 열 왕이라면 작은 뿔도 같은 뿔이기 때문에 왕권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교황권은 교황을 최고의 위치로 섬기고 있는 강력한 왕권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로마의 바티칸은 지금도 교황이 군주로서 군림하는 하나의 독립된 도시 국가인 동시에 절대적 군주 국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나라도 교회 자체가 국가로서 군림하는 형태는 없다.

다섯째 증거, 열 뿔과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교황권
“열 뿔은 …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단 7:24. 교황권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정치적인 왕국들과는 다른 종류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교황권은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조직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 있던 어떠한 제국들과도 다른 종류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전의 왕국들은 사람의 몸을 다스렸지만, 교황권은 사람의 영혼까지 다스렸다. 또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어서(단 7:8), 통찰력 있는 눈을 통하여 세계 정치와 종교계를 감독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여섯째 증거, 하나님께 대적하고 “큰 말”을 하는 교황권
작은 뿔의 정체를 드러내는 결정적 단서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여섯 번째 특징은“지극히 높으신 자”(하나님)에 대하여“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것이다(단 7:8,25). 과연, 교황권은 이러한 작은 뿔의 특징을 만족시킬까? 카톨릭 교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카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크고 참람된 말을 들어 보라. 로마에 있는 교황권에서 발행했으며, 카톨릭 교회 백과사전에 의해서 인정 받고 있는 책인 Prompta Bibliotheca Cononica Juridica Moralis Theologica 에 기재되어 있는 루실 페라리스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에서의 하나님이시며,왕 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Vol. VI, p.25-29.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의 최상권에 관한 모든 것들은 모두다 교황에게도 적용된다.”Bellarmin,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Vol. 2. “주 하나님이신 교황”(Extravagantes 4장, title 14, Declaramus 주해). “법왕이 삼층 면류관을 쓴 까닭은 이것이니 그가 하늘의왕, 땅의 왕, 또 지옥의 왕인 연고이다”(Lucius Ferraris, Prompta Bibliotheca 6권, p.26, “para”함.) “교황 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 … 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중왕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Pope, P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이 외에도 성경이 참람되다고 선언하는 수많은 주장들이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교황 권의 주장이야말로 작은 뿔에 대한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증거,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였던 교황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며” 단 7:25.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교황권이 수백만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순교시켰던 무서운 역사의 장면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수백만 명의 성도들이 교황권에 의해서 주도된 종교재판을 통하여 잔혹하게 죽어 갔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천주교회의 한 주교에 의해서 기록되었으며, 카톨릭 교회의 인가를 얻어서 출판된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카톨릭교회 … 무서운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류와 직면하게 되면, 교회는 힘과 육체적 형벌과 고문의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교회는 종교 재판과 같은 재판정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국가의 법이 교회를 지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특히, 교회가 16세기 때에 개신교도들에게 행하였던 것과 같은 것들이 재현되어야 한다 … 프랑스의 프란시스 1세와 헨리 2세 그리고 영국의 메리 튜더 왕가 당시에, 교회는 이단자들을 고문하였다” The Catholic Church, The Renaissance and Protestantism,pp. 182-184. 우리는 카톨릭과 개신교회 양측의 역사가들로부터, 교황권이 개신교도들을 고문하였던 기록들을 수없이 얻을 수 있다. 이제, 다니엘 7:25에 나오는 작은 뿔에 대한 예언의 완벽한 성취를 입증하는 여덟 번째 증거로 넘어가 보자.

여덟째 증거, “때와 법”을 변경시킨 교황권
다니엘 7:25는 작은 뿔이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시키는 시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작은 뿔에 대한 이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교황권은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에서 두가지 계명을 변경시켰다.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 문답과 교리 책에서 두 번째 계명을 제거하였는데,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은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2번째 계명을 빼어버리는 대신에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만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십계명을 이렇게 변경시킴으로써,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십계명에는 우상 숭배에 대한 계명이 없고, 대신에 탐심에 대한 계명이 두 개로 늘어났다.

둘째 계명 뿐 아니라 네번째 계명에 대한 변경도 교황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교황권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토요일)을 일요일로 대체하는 놀라운 시도를 하였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이루어진 이러한 변경으로 인하여 지금은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까지도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비성서적 관습을 따르게 되었다. 사단은 교황권을 통하여 이토록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경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법은 지금까지 변경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결코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 증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의 전성기를 누렸던 교황권
“성도가 그의 손에 붙인 바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이 말씀은 작은 뿔 세력이 1260년 동안 지상에서 권세를 휘두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도 교황권에게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 교황권이 중세기의 천년 이상 동안 전성기를 누리며,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분의 성도들을 핍박하며, 율법을 유린할 것에 대한 예언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7번이나 반복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7번이나 반복된 하나님의 경고 - 단 7:25, 단 12:7, 계 11:2, 계 11:3, 계 12:6, 계 12:14, 계 13:6) 이 놀라운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만 한다. A.D.538년, 저스티니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교황권에게 막대한 권세가 부여되었다. 이 때부터 1260년의 시간을 내려가면1798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해에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가서 교황을 그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교황은 프랑스의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으며, 교회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결코 로마 교회의 차기 교황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당시, 온 세상은 카톨릭 교회가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A.D.538년으로부터 시작된 1260년의 예언은 A.D.1798년에 교황과 로마 교회가 붕괴됨으로써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로마 천주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정치적, 종교적 권세를 잃어버렸다. 이리하여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에 관한 9가지 예언이 도무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카톨릭 교회에게 성취된 모습을 확인하였다. 작은 뿔에 대한 9가지 예언을 모두 정확하게 만족 시킬 수 있는 세력은 오직 교황권 외에는 없다.

요한계시록 13장의 복합 짐승 = 작은 뿔

앞에서 했던 다니엘서 7장 예언 연구를 통하여,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 초반에 등장하는 이상한 복합 짐승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에 대한 예언을 공부하면서,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복합 짐승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동일한 세력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세력을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상하고 복합적으로 생긴 짐승을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3:1-2에는 표범의 몸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는 이 짐승의 모습이 나오는데,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눈에 익은 표현이 나온다:“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도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절의 나머지 부분을 계속해서 읽어보자.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42달 동안 권세를 휘두를 것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들이 다니엘 7장에서 배웠던 기간 예언에서 공부했던 것이 아닌가?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42달=1260일, 그런데 기간을 말하는 예언에서 하루는 일년이므로 1260일은 1260년으로 해석해야 되는 예언 해석 원칙이 기억나는가? 마흔 두 달은1260년에 대한 다니엘 7장의 예언과 동일한 예언이다. 7절에는, 짐승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정보가 나와 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이 짐승 역시 성도들을 핍박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과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은 동일한 세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니엘 7장에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상한 짐승으로 상징된 것이다. 사용된 상징이 다를 뿐이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모두 교황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황권이 중세기의 1260년 동안에 지상에서 그 권세를 휘두르는 모습을 작은 뿔과 이상하게 생긴 복합 짐승의 모습을 통하여 그려 놓으셨다.

요한계시록 13:3에서 우리는 작은 뿔과의 또 하나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우리가 앞에서 배웠던 것처럼, 1260년의 예언이 끝나는 시점인 A.D.1798 년에 교황 권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즉,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은 교황을 사로 잡아서 파리 감옥에 투옥시킴으로써, 교황은 거기서 옥사하였다. 그 때, 온 세상은 교황권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3은“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말함으로써, 1798년 이후의 교황권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이 예언대로 교황권의 죽었던 상처는 나았고, 온 세상은 교황권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고 있다. 이 예언은 우리들의 눈 앞에서 지금 너무도 분명하게 성취되고 있지 않은가! 1929년, 이태리의 뭇솔리니 총통은 카톨릭 교회가 과거에 몰수당했던 재산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화친 조약에 서명한 문서를 교황에게 주었다. 이로써 교황은 다시 한번 권세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바티칸 시는 정치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회복하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교황권의 영향력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되어 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교황이 거의 모든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막후에서 행사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소련 과 동구권이 무너지는 대 사건이 있은 후, 미국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인 타임 지는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의 사진을 표지에 실으면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교황과 미국 정부가 막후에서 일했던 내용을“거룩한 동맹”(Holy alliance)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교황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들은 바티칸에 그들의 정치적인 대사들을 주재시키고 있다. 교황권이 세계 정세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력들이 각종 주요 신문의 표지 기사로 등장하고 있다. 교황이 말하는 거의 모든 메시지들이 온 세상에서 인쇄되며 전파되고 있다. 수억의 사람들이 교황을 오늘날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죽게 되었던 상처가 분명히 낳았다! 지금, 온 세상은 짐승의 뒤를 따르고 있다!


제2부. 용과 여자

(요한계시록 13장 전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33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짐승은 어디에서 그러한 권세를 받았는가? 누가 작은 뿔에게 1260년 동안 성도들을 핍박할 수 있는 권세를 주었는가? 요한계시록 13:2은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보여준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었더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는 말에 주목해보자. 그런데 용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2:7-9에 용으로 상징된 정체가 나와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deceive, 기만하다)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용=옛 뱀=마귀=사단)

물론, 용은 사단 자신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단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온 세상을 기만하였는가?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 이 지구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장차 태어날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두 사람은 누구였는가? 물론 아담과 하와였다. 사단이 뱀으로 가장하여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임으로써, 사단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 구성된 온 세상을 기만하였으며, 그 결과 이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단은 자신의 권세를 어떤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 것이다. 선과 악의 대 쟁투는 하늘에서 시작되었지만, 에덴 동산을 통하여 그것은 이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다.

여자와 원수가 되는 사단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범죄에 가담한 범죄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창세기 3:15에서, 우리는 뱀 곧 사단(용)에게 선언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긴 기간에 관한 예언으로써, 용과 여자 그리고 용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펼쳐지는 치열한 투쟁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예언에서 여자(woman)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여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교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예레미야6:2. 여기서 시온은 누구를 뜻하는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이사야51:16. 신약에서도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린도후서 11:2. 그러므로 에덴 동산 이후부터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항상 치열한 대 쟁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두 진영이 존재해 왔다. 지금도 용과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을 따르는 백성들을 향하여 공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오류, 그리고 사단과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격렬한 투쟁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한다.

두 진영

하나님과 사단은 지구에 살고 있는 각 개인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의 자녀들을 통해서 후세에 계속해서 존재할 두 무리의 투쟁을 볼 수 있다. 가인은 용의 진영에 속하였음이 그의 생애를 통해서 드러났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방법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고집하였다. 아벨은 하나님의 진영에 속한 자였으며, 그의 생활이 너무도 의로웠기 때문에 가인은 마침내 그의 아우를 살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두 아들에게 각각 양을 잡아서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물 대신에“땅의 소산”(곡식과 채소 등)으로 제물을 삼았다. 앞으로 함께 공부하겠지만, 가인의 이러한 특성은 세대를 내려오면서 짐승의 변치 않는 특성으로 나타났다. 가인은 하나님의 분명한 진리 대신에 자신이 고안한 위조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는데, 가인의 이러한 특징은 용(사단)의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전수되어 내려왔다.

가인의 후손들로 인해서, 세상은 너무도 타락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밖에 없으셨다. 그러나 홍수 이후, 또 다시 두 진영이 나타났다. 용(사단)의 추종자들은 바벨에 모여서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거대한 탑을 건축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전하고자 하였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계획은 실패하였으며, 바벨탑이 세워졌던 장소에는 후에 바벨론 이라는 대제국이 세워졌다. 바벨론 은 세계를 지배하는 대제국 중에서 역사에 나타난 첫 번째 대제국이 되었다(B.C. 605년). 바벨론 시대 초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바벨론 에서 불러내서 그를 가나안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이 잘못된 오류와 풍습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용(사단)과 태양 숭배

용(사단)의 진영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여 보자. 바벨론은 지상에 세워진 용의 첫 번째 수도였다. 바벨론 에서부터, 이방 종교가 태양 숭배의 형태로 일어났다. 바벨론 사람들의 종교였던 태양 숭배는 참람된 우상 숭배이며, 부도덕함과 혼잡한 의식이 가득 차 있었다. 바벨론이 메데-페르시아(메데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되었지만, 메데와 페르시아에서 흥왕 하였던 태양 숭배 종교는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메데와 페르시아 역시 용의 사령부로 전락하였다. 바알(태양신의 이름) 숭배는 바벨론 때와 마찬가지로 메데, 페르시아를 장악하였다. 메데-페르시아가 멸망하고 그리스가 패권을 잡았지만, 여전히 태양 숭배는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갔다. 그리스가 무너지면서, 로마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태양 숭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미뜨라 교와 태양 숭배는 로마 제국 당시 전국적으로 편만해 있던 이방 종교였다. 바벨론 시대부터 로마 제국 시대까지, 용은 태양 숭배 사상을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세계를 통치하는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여자의 후손이 로마 제국 시대에 이 지상에 나타났다. 창세기 3:15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후손과 용의 후손 사이의 적대감(enmity, 원수)에 관한 예언을 기억하는가? 요한계시록 12:1에 상징되어 있는 여자의 모습은 참된 교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순결한 여자는 참 교회를 상징하고, 타락한 여자(음녀)는 비성서적 교리와 오류 위에 세워진 거짓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요한계시록 12:1에 나와 있는 여자는 순결한 진리를 보존하고 있던 참 교회 즉, 사도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 여자의 머리에 쓴 면류관에 달린 열 두 별은 12제자를 의미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을 살펴보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 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 12:2-5. 자, 여기에 나오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만국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간 남자 아이는 오직 1명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다른 사람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그를 죽이려 하였던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로마 제국의 왕인 헤롯이다.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유대 나라에 있던 2살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살해하였다.

여기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로마 제국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단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상징인“붉은 용”을 사용하고 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로마 제국과 너무나 긴밀하게 함께 일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은 사단과 동일한 상징을 사용하여 묘사되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살인 명령을 피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이집트로 도망하였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가한 사단의 치명타는 일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죽음의 굴레를 부수고 부활하심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그로부터40일 후,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 올리어져 가심으로써, 예언의 말씀을 완전하게 성취시켰다.

용(사단)이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그의 분노를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돌렸다. 요한계시록 12:13에서 우리는,“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라는 핍박의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세상에는 오직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므로, 사단은 그들을 핍박함으로써 완전하게 박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의 극렬한 핍박 하에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복음의 불은 점점 더 크게 타올랐고 퍼져나갔다. 수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이야말로 참된 여자의 후손들이었다. 한 사람이 순교했을 때, 수백 명의 영혼들이 그가 남기고 간 자리를 채웠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문 앞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로마는 점점 더 쇠약해 짐에 따라서, 용의 후손이 나타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용의 후손

수세기 동안, 사단은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고 박멸시키기 위해서, 온갖 박해와 핍박을 자행하였지만, 결국 사단은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사단은 힘을 이용한 작전을 사용하는 대신에 전략적이고 기만적인 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사단은 고대 바벨론부터, 메데-페르시아, 그리스를 통하여 로마 제국까지 전수되어 내려온 이교의 가르침을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과 섞어놓고자 하였다. 사단은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기만 속으로 몰고 가고자 하였다.

용의 후손 즉, 사단의 후손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1-2. 여기에 나오는 짐승이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이상한 동물의 복합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황권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시면서, 과거에 지나간 이교 제국들의 모습에서 각각 일부분을 취하여 짐승 전체의 모습을 만드셨다. 교황권이 복합적인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짐승으로 묘사된 이유는,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부요함, 권력, 우상숭배, 인본주의, 영혼불멸사상, 엄격한 법 제도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특성들을 교황권이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 설명(다니엘 7장 참조, 살아남는 이들 3호)

1. 모습: 다니엘 7장에 나오는 4가지 짐승 즉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무섭고 놀라운 짐승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 즉 사자의 입, 곰의 발, 표범의 몸, 일곱 머리, 열 뿔과 4가지 짐승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

2. 일곱 머리의 구성: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의 머리 숫자의 합, 즉 사자(바벨론) 머리(1개) + 곰(페르시아) 머리(1개) + 표범(그리스)머리(4개) + 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 머리(1개)=일곱 머리

3. 열 뿔의 위치: 다니엘 7장에 있는 넷째 짐승 즉, 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의 머리에 있던 열 뿔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 나머지 세 짐승들에는 뿔이 없음.

4. 열 면류관의 위치: 짐승의 머리에 나와 있는 열 뿔 위에 열 면류관이 있음
사단은 교황권에게 어떤 권위를 주었는가?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2. 사단은 A.D.330년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대제를 통하여 교황에게 로마 시 전체를 양도하면서 보좌를 내주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었다. 황제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권좌를 소유할 수 있도록 로마 시를 교황에게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교황은 모든 인간들의 권위로부터 세상 끝까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Papal Rights and Privileges, pp.13.

“A.D.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전함에 따라서, 사실상 유럽의 서쪽에 있는 교회들은 황제의 권력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났으며, 교회 자체의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교황이 로마 황제의 권좌를 물려 받음에 따라서, 교황은 서쪽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었으며, 영적인 지도자뿐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추대 받았다.”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pp. 168. 이러한 역사의 기록은 교황권이 어떻게 사단이주는 권좌에 앉을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단은 로마 제국의 황제를 통하여 교황권에게 그의 권세를 주었다(공식적인 선언은 A.D. 538년에 있었으나, 사실상A.D. 330년부터 그러한 인정이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권세와 보좌는 어디로부터 얻은 것인가? 그리스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리스는 어디에서 권세와 힘을 얻었는가? 메데-페르시아로부터 얻었다. 메데-페르시아는 어디에서 얻었는가? 바벨론으로부터 얻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어디에서 권세를 얻었는가? 용으로부터 얻었다. 바벨론에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가 계속해서 대제국들에게 전수되어온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사단은 대제국들에게 태양 숭배 사상을 접목시킴으로써, 대제국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짐승)에게 주었더라”라는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라(요한계시록 13:2). 하나님께서 짐승의 권세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짐승의 뒤에는 용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방 종교의 가르침이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으로!

어떻게 이방 종교의 교리가 교황권이 이끄는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갔을까? 사단은 진리를 위조하는 일과 진리를 오류로 대치하는 일에 매우 노련한 전문가이다. “위조와 대치”야말로 사단이 관여하는 모든 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거이다. 용의 후손으로 등장한 짐승의 세력인 교황권의 가르침 속에는 진리가 이방 종교의 오류에 의해서 대치되거나 위조된 것들이 많이 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행하였던 것처럼, 교황권도 하나님의 계명(명령)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였다. 태양 숭배에 관련된 많은 관습들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왔다. 교황권은 당시 수많은 이방 종교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 각종 이방 종교의 가르침을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방 종교에서 섬기는 우상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베드로, 마리아, 그리고 각종 성자들의 상을 교회 안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이방 종교인들로 하여금 호의를 느끼도록 유도하였다.

어떻게 이방 종교의 관습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로서 크리스마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관습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아는가? 크리스마스를 축제일로서 준수하는 관습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12월 25일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수백년 전부터 축제일로 지켜졌다. 그 당시, 이방 종교인들은 태양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12월에는 낮의 길이가 점점 더 짧아지는 것을 보면서, 태양이 그들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태양이 그들을 완전히 떠나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도하면서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러다가 25일이 되면, 태양이 자신들에게 좀더 가까워지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태양이 다시 태어났다”라고 말하면서, 12월 25일을 태양 또는 태양신의 출생일로 불렀다. 이렇게 시작된 12월 25일이 나중에는 이방 종교인들에게 커다란 축제일이 되었다.

교황권이 이방 종교인들의 축제일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기 전까지, 태양 축제일은 이방 종교인들에 의해서만 지켜지던 날이었다. 그러나 교황권은 이방 종교인들의 신인 태양(SUN)의 축제일을 하나님의 아들(SON)의 탄생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옥스포드 대학의 헬라어 교수인 길버트 머레이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방종교인 미뜨라(Mithraism) 종교인들이 매우 많이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게 되자, 그들은 성경적인 안식일(Sabbath) 대신에 그들의 태양일(Sun-day)을 준수하자고 압력을 가할 수 있었으며, 태양의 출생일인 태양일(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준수하자고 주장할 수 있었다.”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Light of Modern Knowledge Chapter III.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을 모른다. 12월 25일이 교회에서 준수되고 있는 이유는 태양 숭배의 축제일을 교황권이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교황권이 채택하였던 태양의 축제일이 개신교회에까지 그대로 전수된 모습을 보면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부활절(Easter)은 어떤가? 부활절은 오늘날 거의 모든 현대 교회들 가운데서 지켜지고 있는 준수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부활절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방인들 사이에서 준수되던 축제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방 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태양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지점에서 비추는 이른 봄이 되면 모든 만물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재생산 활동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한 날을 지정하였는데, 그 날은 특별히 자연계에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가져다 주는 이쉬타 신(Ishtar, 생산과 생식의 신)을 위해서 제정되었다. Easter(이스터, 부활절)라는 단어는 Ishtar(이쉬타) 라는 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단어이다. 교황권이 부활절(Easter)을 채택함으로써, 교회는 이쉬타 신의 숭배를 기념하게 되었다.

수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평신도들은 부활절 토끼(bunny rabbit)나 부활절 달걀(Easter egg)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의아해하고 있다. 물론, 아무런 상관도 없다. 토끼는 이교도들에 의해서 이쉬타 신을 경배하는 날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는데, 그 이유는 토끼는 매우 왕성한 생식 활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달걀 역시 풍부한 생식과 증식의 상징으로서 취급되었다. 이교도들 사이에서, 그 날은 매우 부도덕한 성행위를 갖는 날로 인식되었다.

이교도들이 대거 개종함에 따라 교황권이 크게 성장하게 되자, 교회는 이쉬타 신의 경배 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그날을 부활절(Easter)이라고 불렀다. 이쉬타 신의 날과 함께 토끼나 달걀 같은 상징물들도 받아들임으로써, 그 날이 이교도들에게서 유래되었다는 증거를 오늘날까지 남기고 있다. 이러한 예증들은 단지 사단이 어떻게 이교도의 사상과 관습을 그리스도 교회에 이끌어 들였는가를 보여주는 일면에 불과하다. 교황권이 흥왕하게 되면서, 비 성서적인 가르침과 관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교황권은 그 권세와 기만적인 술책으로 교회를 주도해 나갔으며, 참된 진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여자의 후손들을 박해와 핍박으로 박멸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면에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가르침을 충성스럽게 따르고 있는가? 만일 인간의 전통과 이교도의 관습이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쉽게 들어왔다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다른 가르침들은 하나님의 진리로서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들은 비록 그것들이 이교도들의 관습에서 유래된 잘못된 것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직접적으로 어긋나는 것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절과 탄생일을 반드시 준수하라는 하나님의 계명(commandments, 명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탄생을 일년 중 어떤 시기나 날짜에 기념하거나 준수할 수 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정확한 가르침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그리스도 종교의 심장부를 강타한 이교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계명과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지나친 염려를 나타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태도는 교회 안에 불필요한 불화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황권의 권세가 날로 커짐에 따라서,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는 몇몇 핵심적인 진리들을 거짓 교리로 대치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부디, 우리 모두의 영적 눈이 열려서, 사단의 위조 물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서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제3부. 짐승의 숫자와 표

짐승의 세력을 나타내는 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와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요한계시록 13:16-18. 지금까지 우리는 짐승의 세력(작은 뿔)을 나타내는 9가지 예언과 교황권에 대한 그것의 적용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짐승의 이름과 숫자를 설명함으로써,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은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10번째 증거를 추가하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13:17-18에 근거하여 볼 때, 논리적으로 우리는 짐승의 이름의 수는 결국 사람의 수와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그러므로 짐승의 이름=짐승의 이름의 수=짐승의 수=한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 여기서 한“사람(a man)”이란 누구인가? 의심할 여지없이, 짐승의 세력을 주도하는 최고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다니엘 7:8과 요한계시록 13:5에서도, 작은 뿔과 짐승을 각각“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가진 한“사람(a man)”으로 지목하고 있는 점을 기억하라. 고대로부터 사람의 이름의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각 알파벳마다 고유 숫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알파벳의 숫자들을 모두 합하면,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수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방법을 교황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톨릭 교회의 머리인 교황의 공식 칭호를 알아야만 한다. 또한, 짐승의 이름을 대표하는 한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는 당연히 그 조직의 최고 지도자의 공식 칭호의 수이어야 한다.

교황에게는 라틴어로 된 공식 칭호가 있는데, 이것은 카톨릭 교회가 교황에게 부쳐준 이름이다. 우리는 교황의 공식 칭호를 카톨릭 교회에서 발행한 출판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15년 4월에 발행된<Our Sunday Visitor> 라는 이름의 카톨릭 주간지에서, 우리는 교황이 쓰는 삼층관에 새겨진 공식 칭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카톨릭 주간지에 실렸던 원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Vicarius Filii Dei, 이것은 라틴어인데,‘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Vicar of the Son of Go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는 지상에 있는 지도자(head)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기 전에 베드로를 당신의 대표자로 지정하셨으며, 교회의 머리인 교황에게는‘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Christ)’라는 직위를 주었다고 믿는다.” 또한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에는“Vicar of Christ(그리스도의 대리자)”에 대해서“8세기부터 시작된 교황의 특별 칭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현재, 교황이 쓰고 있는 삼층관에는 라틴어로 된 직함(칭호)이 새겨져 있지 않지만, 새로 즉위하는 교황의 대관식 때에 이 직위를 받게 된다.

자, 이제 짐승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수를 계산해 보자. “Vicarius Filii Dei”라는 이름의 각 라틴어 철자가 가지고 있는 숫자의 합을 계산해 보면, 우리는 666이라는 실제숫자를 얻게 된다. (자료출처: “Roman Numerals”-숫자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로마글자(철자, Letters)). 아래와 같은 계산법을 사용하여서 교황의 공식 직함(official title)을 계산하면, 정확하게 666이 나온다.

계산 방법
V=5F=0D=500
I=1I=1E=0
C=100L=50I=1
A=0I=1
R=0I=1 501
I=153
U=5
S =0
112

전체 숫자의 합: 112+53+501=666

어떤 사람은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오직 이것에만 의존해서 교황권을 짐승의 세력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황권이 짐승의 세력 임을 증명하는 10개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계산 결과를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나머지 9 예언들이 너무나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교황권을 짐승(작은 뿔)으로 지목하고 있다. 성경이 짐승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기록해 놓은 10개의 예언들이 모두 교황권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엄숙함을 느끼지 않는가?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인물이나 세력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지금까지 연구한 10가지의 예언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가? 오직 교황권 이외에는 어떤 것도 10가지 예언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교황의 공식 칭호와 짐승의 수인 666과의 정확한 일치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 위에 하나의 증거물을 더 올려놓는 것에 불과하다.

짐승의 표, 마귀가 만들어 놓은 최고의 기만

이제, 짐승의 세력에 대한 문제에서 가장 절정에 속한 것을 연구해보자. 앞에서, 우리는 짐승의 세력이 하나님의 진리를 위조한 거짓 가르침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왔던 것을 배웠다. 거짓 가르침은 항상 하나님의 진리와 이교 사상의 혼합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는“바벨론”즉 “혼잡”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표현되고 있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조한 거짓 가르침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전통을 따르는 것, 침례 대신에 세례를 받는 것,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인간 마리아를 중보자로 믿는 것, 성만찬 예식 대신에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는 예식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영원 불변한 법 대신에 변경된 법을 지키는 것, 죽음 대신에 연옥을 믿는 것, 하나님의 인 대신에 짐승의 표를 지지하는 것.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위조 가르침들 가운데, 짐승의 표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보자.“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forehead, 앞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요한계시록14:9-10. 이 성경절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표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것을 피하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해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짐승의 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과 반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짐승의 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7:2-3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짐승의 표와 마찬가지로 앞이마(forehead)에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forehead, 앞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 7:2,3.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는 위치는 둘 다 앞이마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무엇이 하나님의 인(the seal of God) 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과 반대가 되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식별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인(the seal of God)

인(seal, 도장, 봉함)이란 법적인 문서와 관계 있는 용어이다.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는 항상 그 문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의 인이 찍혀져야 한다. 각국의 정부마다 법적인 문서에 찍을 수 있는 인을 가지고 있다. 인을 찍는 목적은, 인이 찍혀진 문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특히, 국회에서 통과된 나라의 법규 문에는 반드시 국가 수뇌인 대통령의 인이 찍혀져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법조항의 권위와 집행력을 대통령이 보장하기 때문이다.
인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1) 통치자의 이름, 2) 통치자의 칭호, 3) 통치 구역. 미국 대통령의 인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살펴보자: 미 합중국 대통령 죠지 부시의 인(印)은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죠지 부시 (통치자의이름), 2. 미합중국 (통치 구역), 3. 대통령 (통치자의 칭호). 대통령의 인이 어떤 공식 문서에 찍힐 때, 그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의해서 실시될 것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율법(계명)과 하나님의 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만일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찍혀지는가? 이사야 8:16을 함께 읽어보자: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seal, 인을 치라)하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은 제자들, 즉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봉함된다(인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 제자들의 어디에 봉함될까(인이 쳐질까)? 히브리서 10:16은 율법이 봉함되는(인쳐지는) 장소를 말해준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바로 이것이, 새 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봉함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사실을, 성경은 이마에 기록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 있는가? 우리의 마음과 양심은 앞 이마(forehead), 즉 두뇌의 앞부분인 전 뇌에 있다. 이마에 있는 전 뇌에서는 이성적인 의지와 판단을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잠언 7:2-3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하나님의 법을 “네 손가락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준수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인쳐지는 장소는 그분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의 이마(마음과 생각)에 새겨지게 된다.

하나님의 권위의 표

세상 법이 최고 통치권자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 중에서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인의 역할을 하는가? 우선,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포함하고 있는 율법을 찾아보자. 한 국가의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에 의해서 권한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도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권한에 근거해서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10:10-12을 읽어보자:“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또한 시편96:5에 나오는 말씀을 보라:“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이사야 40:25-26에 역시 하나님의 창조와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참 하나님을 구별하는 한가지 놀라운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창조의 권능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진리이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창조에 근거하여서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권능을 사람들이 언제나 기억함으로써,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창조를 기념하는 기념일과 표징을 태초의 창조 주일에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안식일은 하나님과 다른 잡신들을 구별케 하는 창조의 권능을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율법 속에 들어 있는 인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율법 중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일까? 인에는 반드시 통치자의 이름과 직위와 통치 구역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기록하여 주셨던 영원 불변의 십계명을 살펴보면, 오직 한 계명이 인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을 구성하는 3가지 요구 조건들이 한 계명 안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십계명의 중심부에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기념하는 법이 있는데, 그 계명에는 인의 3가지 구성요소가 들어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1. 통치자의 이름)의 안식일인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2. 통치 구역)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3. 창조주, 통치권자의 직위),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8-11.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인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며, 지구를 통치하는 유일한 신이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당신의 인을 기록해 놓으심으로써, 나머지 모든 계명도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여러분 중의 어떤 분들은“안식일이 정말 하나님의 인 인가요?”라고 질문할 것이다. 에스겔 20:12는 그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하고 있다.“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당신 자신의 표징(sign)이라고 칭하셨다. 그런데 성경에서 표징(sign)과 인(seal)은 동일한 것으로 사용된다. 로마서 4:11은 인과 표징이 동일한 것이며, 성경에서 이 둘은 서로 호환성 있게 사용되고 있는 표현임을 말해주고 있다: “저가 할례의 표(sign)를 받은 것은 무 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seal)친 것이니.” 인(seal) = 표징(sign).

인(seal)과 표(mark)의 비교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비교 분석해보자. 이 둘은 서로가 완전히 대조적인 것들이다. 요한계시록 14:9-10에 나오는 셋째 천사 기별 속에는 짐승의 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속해서 12절부터는 또 다른 무리가 설명되고 있다:“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결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인을 포함하고 있는 십계명은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 책이 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인은 안식일이므로, 짐승의 표는 안식일과 정반대로 대조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는 무엇인가?

율법을 변경시키기 위한 시도들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교황권의 행적이 묘사되어 있는 다니엘 7:25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 코자 할 것이며.”이미 앞에서, 우리는 교황권이 2번째 계명을 없애고,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그것을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로 만들었던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서 카톨릭 교회가“법”을 변경시켰던 사실은 입증되었다. 그런데“때”도 변경시켰는가? 십계명 중에“때”를 가리키는 계명이 있는가? 4째 계명이 유일하게 시간(때)와 관련된 계명이다. 교황권이“때”를 나타내는 안식일 계명도 바꾸었을까? 그렇다! 매우 희한한 과정을 거쳐서 안식일을 변경시켰다.

앞에서 배운 바와 같이, 이교도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예배일로 준수하던 날은 주일 중 첫째 날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일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 날을 태양일(Sun-day, 일요일의 기원)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은7째 날인 안식일을 준수하였으며, 이교도들은 첫째 날을 준수하였다. 그러나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 대제의 임기 동안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태양신을 믿는 이교도였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함으로써, 그를 따르던 수많은 이교도들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의 집권을 안정시키고, 이교도들의 호감을 사며,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태양 숭배자들이 하던 여러 가지 관습과 의식을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과 같은 것들이 바로 이때에 시작된 관습들이며, 일요일 예배 전통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예배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교도들에게 일요일에 예배드릴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그날에 함께 예배 드리라고 포고령과 함께, 일요일 예배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시작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콘스탄틴 황제는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첫 번째 법령을 만든 사람이 되었다. 교황권은 일요일 휴업령이 온 교회와 세상에 퍼질 때까지 계속해서 일해왔다. 교황권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이는 일요일 예배 전통이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인 증거들

세상 역사가들이 안식일의 변경에 대해서 제시하는 증거들을 살펴보자. 여러분 자신의 눈으로 변경된 역사를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 것이다. 유명한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는 일요일(Sunday)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콘스탄틴은 일요일 준수를 위한 첫 번째 법령을 만든 사람인데, 그는 로마 제국 전체를 통하여 정규적으로 축하되어야 되는 날로서 일요일을 지정하였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헬라어 교수인 길버트 머레이 박사는 일요일 준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미뜨라 신은‘무적의 태양’이고, 태양은 ‘충성스런 별’이었기 때문에, 미뜨라 교도들은 지상에서 미뜨라 신의 대리자로서 일할 수 있는 왕을 찾게 되었다 ... 그들의 눈에는 로마 황제야말로 그들이 찾는 참된 왕으로 보였다. 그리스도 교회와 날카로운 대립 관계에 있던 미뜨라 교도들에게 있어서, 로마 황제는 거룩한 신의 은총을 지닌 자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군대와 민간 기관에서 일하고자 하는 미뜨라 교도들의 지원이 넘쳤다 ...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스도 교계로 하여금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서 태양의 출생일인 12월 25일을 준수할 것에 대한 미뜨라 교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Light of Modern Knowledge.

윌리암 후레드릭 박사 역시 동일한 역사적 진리를 증거하고 있다:“이방인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였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가장 거룩한 날이었다.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교회는 일요일을 쉬는 날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이방인들의 예배일을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일로 채택하던지, 아니면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배일을 안식일로 바꾸도록 해야만 하였다. 교회가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예배일을 안식일로 바꾸도록 만드는 것은, 이방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교회 자신에게도 거침돌이 되는 일이었다. 교회는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예배일을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좀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Sunday and Christian Sabbath, pp. 169.

그리스도 교회가 이방인들의 태양일(Sun-day)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The North British Review 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이방인 이웃들과 동포, 그리고 애국자들은 편의상 일요일을 주의 날인 안식일로 만드는 일에 연합 하였다 ... 사실, 일요일이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날로 확고하게 되었을 때까지, 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채택하지 않았다.”Vol. XVIII, pp. 409.

카톨릭 교회의 동의

다니엘 7장은 교황권이“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과연 교황권은 안식일의 변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공정하게 취급해야만 하므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들어야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카톨릭 교회에서 잘 알려진 권위 있는 저자들의 글은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유대인의 안식일인 제 칠일 안식일을 주일 중 첫째 날로 변경한 후에, 교회는 일요일을 주의 날로서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내용으로 3째 계명을 만들었다.”Catholic Encyclopedia, Vol. IV, pp. 153.

“주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라는 말이 성경에는 전혀 없다. 우리는 이러한 변경이 교회의 전통에 의해서 지금까지 내려온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수많은 개신교인들에게 느끼고 있는 비논리적인 점이다. 그들은 오직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카톨릭 교회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변경된 주의 날을 일요일로 지키고 있다.”Salvation History and the Commandments, pp. 294, 1963 edition.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을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시켰다 ...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축제일로서 토요일보다 일요일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This is Catholicism, 1959 edition, pp. 325.

킬겔런과 위버의 저서인 Life in Christ 에 실려 있는 천주교회의 1958년도판 교리문답에는 다음과 같이 천주교회의 신앙을 소개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왜 교회는 주의 날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켰는가? 그리스도께서 교황에게 주신 묶거나 푸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교회는 주의 날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pp. 243.

스테판 키넨의 저서, A Doctrinal Catechism 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질문; 천주교회가 축하의 개념을 새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대답; 만일 천주교회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면, 모든 현대 종교인들이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면, 교회는 토요일 준수를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요일 준수로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대체”라는 말을 주목해야 된다. 예로부터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거나 위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카톨릭 교회의 기본스 추기경은 그의 저서, The Question Box, pp. 179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만일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유일한 안내서라면, 유대인과 함께 토요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이다 … 성경을 자신들의 유일한 선생으로 삼고 있는 개신교도들이 일관성이 없게 카톨릭 교회가 만든 전통을 따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존 오브리엔은 그의 저서, Understanding the Catholic Faith, p. 13(1955년도 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성경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카톨릭 신자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 행습 역시 지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일요일 예배 전통이나 그날에 불필요한 노동을 삼가하는 전통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개신교회 형제들도 일요일 준수 문제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성경의 어느 곳에도 일요일을 주의 날 즉, 안식일로 지적하고 있지 않다. 교회 역사의 초기에, 교회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가르쳤다.”

미국에 있는 Redemptorist 대학의 학장인 엔라이트 주교는 개신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한 도전을 던졌다: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로 바꾼 것은 카톨릭교회였다. 일요일을 준수하라는 명령과 제7일인 안식일에 노동하라는 명령이 파문의 위협 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달되었다. 개신교인들은 성경의 존엄성을 크게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인정함으로써,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가,‘아니다.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을 지키라.’라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카톨릭 교회의 명령에 경건하게 순종하였다.”그뿐만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라: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조치는 개신교 신자들도 인정하는 것으로…… 그들은 일요일을 지키는 바로 그 행위로서 … (천주)교회가 축일을 제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도록 명할 권세를 가졌음을 인정한다.” (Henry Tuberville 저, An abridgment of the Christian Doctrine, p.58)

“법왕의 권세는 사람의 권세가 아니요 하나님의 권세이므로 그는 하나님의 법도 수정할 수 있다.”(Lueius Ferraris, Prompta Bibliotheca Canorica Vol. lv,)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이 도전에 대답해야만 한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순종하겠는가? 대주교인 C.F. 토마스가 안식일의 변경에 대해서 하고 있는 말을 들어보라:“물론,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이 자신들에 의해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행위는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권세와 권위를 상징하는 표(Mark)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쟁점이 분명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권위에 대한 증표로서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당신이 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아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 주일 중 첫째 날을 지켜라. 우리가 그것을 변경시켰다. 이러한 변경이야말로 카톨릭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의 법과 그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표(Mark)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의 표는 제칠 일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는 것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일요일 예배는 짐승의 권세가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보다 위대하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십계명에서 4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통치 권한과 통치자의 이름, 통치 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인의 역할을 하는데, 교황권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체함으로써, 일요일을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로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온 세상은 교황권이 변경시킨 위조물을 따라서 움직여지고 있다. 우리 각자의 앞에는 하나님의 권위와 짐승의 권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되는 결정이 놓여 있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그분의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카톨릭 교회가 세워놓은 짐승의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오직 두 길만이 있을 뿐인데, 그 두 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하나님과 용, 진리와 오류, 성경과 전통. 성경은 짐승의 표를 피하는 방법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12절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 속에는 안식일 계명이 4번째 계명으로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권위를 증거하는 그분의 인이 찍혀져 있다. 짐승은 바로 이 4째 계명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보다 높은 곳에 두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짐승은 십계명에 있는 하나님의 인을 짐승의 표로 대체시키는 놀라운 기만을 시도해 왔다.

1956년에 발간된 카톨릭 종교를 소개하는 서적으로 카톨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The Faith of Millions 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록을 담고 있다:“성경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을 교회가 아닌 성경에만 두고 있다고 공언하는 개신교인들이 일요일을 예배일로서 준수하고 있는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것은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관한 이러한 변화는 개신교 주의가 태어나기 이전인 15세기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때부터 일요일 준수 전통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요일 준수 전통이 성경이 아닌 카톨릭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통은 계속해서 전수되었다. 마치 집을 도망 나간 아이가 주머니 속에 어머니의 사진이나 머리카락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일요일 준수는 카톨릭 교회를 버리고 떠난 모든 비 카톨릭 교회들로 하여금 어머니 교회인 카톨릭 교회를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오래 전에 기본스 추기경은 안식일에 관하여 직면하게 되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약적인 말을 하였다:“논리와 이성은 우리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즉, 개신교 주의와 토요일의 신성성을 지키든지, 아니면 카톨릭 정신과 일요일 신성성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Catholic Mirror, 1893년 12월 23일.

개신교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개신교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개신교회들로부터 직접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안식일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직한 의견을 들어보자. 다음에 소개할 인용구절들은 개신교회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변인들의 글이다.

침례 교회: 침례 교회의 교회 수칙을 작성한 에드워드 히스콕스 박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이 침례 교회의 지도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과거부터 지금까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존재해왔는데, 그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식일이 제7일로부터 제1일로 옮겨졌다는 말을 한다. … 그러한 변경에 대한 말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신약 성경에는 없다. 전혀 그러한 말을 발견할 수 없다. … 물론, 나는 일요일이 그리스도인의 초기역사에 있어서 종교적인 날로 변경된 사실을 역사적인 기록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이교도들의 표이며, 태양신의 이름과 관련 있는 일요일이 교황 권의 배도에 의해서 안식일로 채택되었는데, 그것이 개신교회의 거룩한 법까지 전수된 사실은 정말 슬픈 사실이다!” 1893년 11월 13일자 뉴욕 신문.

장로 교회: 장로 교회에서 나온 서적인 Christian at work 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그러한 명령을 전혀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명령이라는 이유 하에 일요일 준수 전통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인정한다면, 안식일 준수 자들이 진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Ed. 1883년 4월19일.

감리 교회: 감리 교회 신학 개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아 세례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확실성이 없으며…… 주일 중 첫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

회중 교회: 회중(Congregational) 교회의 W.D. 데일 박사는 그의 저서 십계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아무리 우리가 일요일을 엄숙하고 굳건하게 지킨다고 하여도,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특별하고 거룩한 계명으로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다. 일요일을 준수하면서 계명을 지킨다고 내세울 수 없다. … 일요일을 범함으로써 어떤 형벌을 받는다는 기록이 신약 성경에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

루터 교회: Augsburg Confession of Faith 에 나타나 있는 루터 교회의 입장을 살펴보자:“주일(일요일)의 준수에 대한 내용을 하나님의 계명에서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다.”

감독 교회: 감독 교회의 대변인인 닌덜은 그의 저서 the History of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pp. 187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모든 다른 축제처럼, 태양일 축제(festival of Sunday)도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도들의 거룩한 명령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초기 기독교회가 안식일의 법을 일요일로 옮김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클로비스 챠펠의 저서인 Ten Rules For Living 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다:“우리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안식일이 유대인들이 지키던 안식일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지켜온 안식일은 주일 중 일곱 번째 날이고,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은 첫째 날이다. 우리가 일곱째 날 대신에 첫째 날을 지키는 이유는 어떤 계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회 당시에 예수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이유 하에 주일 중 첫째 날에 예배 드리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또한 일요일 예배 전통은 국가가 일요일을 법적 휴일인 휴식의 날로 정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A.D. 321년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명백한 계명에 근거해서 준수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의해서 강요될 짐승의 표

위에 제시한 것 외에도, 수십 개의 다른 기독교단의 기록을 제시할 수 있지만, 지면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여기서 줄이기로 하겠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답변을 준비하였는가?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1)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변경시키려고 하는 세력이 예언 가운데에 나와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2) 또한 역사는 그 세력이 안식일을 변경시킨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3) 짐승의 세력(교황권)은 자신이 안식일을 변경시켰던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4) 개신교회 또한 안식일의 변경을 시인하였다. 이보다 더 많은 증거와 자료를 필요로 하는가?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진리를 위해서 희생과 헌신의 결정을 할 것인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안식일이 그분께 대한 순종의 표로서 드러나게 될 때가 점점 더 가까워 오고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잇슈가 결정적으로 제시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든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지상에 있는 정부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강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요한계시록 13:16

국가에 의해서 이러한 법령이 내려질 때까지 어떤 사람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다. 참된 안식일과 거짓 일요일 예배가 그 정체를 온 세상에 드러낼 때에,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참 안식일을 마음과 손으로 지킬 것인지, 아니면 교황권이 만들어 놓은 위조 안식일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국가의 영향력과, 교황권에게 충성의 표를 던지는 세상 정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한다.

제4부. 예언에 나타나 있는 미국

미국인 치고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부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같은 자유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러분은 미국이 왜 이러한 자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자유 미국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과 미국의 출현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여러분들은“어떻게 교황권의 세력과 미국의 등장이 관계가 있는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유럽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짐승의 핍박으로 인하여,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조상은 교황권의 종교적인 핍박 때문에 예배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유럽으로부터 그 당시 신세계였던 미국으로 도망 왔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5호, 제33호를 참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부터 그 당시의 역사적인 장면을 찾아보자. 요한계시록 13:1-10은 큰 세력으로 일어나는 교황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0절에는, 교황이 프랑스 혁명정부군에 의해서 포로로 사로잡혀서 죽는 모습이 나온다(1798년).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13:10. 바로 다음에 요한은 두 번째 짐승을 계시 가운데서 보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요한계시록13:11. 여기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분석하여 보자. 이 짐승의 권세를 조명해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나타나 있다.

1. 두 번째 짐승이 나타나는(coming up) 시기는 첫 번째 짐승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시대이다. 프랑스 혁명정부의 버티어 장군이 교황을 사로잡았을 때에 교황권(첫 번째 복합 짐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요한은 이 사건 이후에 두 번째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1798년 무렵에 두 번째 짐승의 세력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2. 두 번째 짐승은 땅으로부터(out of earth) 올라온다. 첫 번째 복합 짐승이 물에서 올라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물”과 “땅”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17:15에서, 물은 사람들과 국가들을 상징한다는 성경의 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첫 번째 짐승이“물”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첫 번째 짐승은 백성과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는 곳에서 나타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땅”은“물”과 대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짐승이“땅”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두 번째 짐승은 기존의 백성이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이 국가는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으며, 첫 번째 짐승이 가졌던 왕관(crown)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국가의 평화로운 양의 모습과, 왕관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은, 이 국가는 왕권을 휘두르는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두 번째 짐승이 어린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이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성경에서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국가는 군국주의나 독재주의를 주장하지 않는 나라이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의 성격에 대한 묘사는 이 국가가 평화스럽고 기독교 정신이 충만한 자유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두 번째 짐승의 정체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짐승의 정체를 역사 가운데서 찾아낼 수 있다.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위의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건국되는 국가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 미국은, 첫 번째 짐승이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던 해인 1798년 무렵에 나타난(coming up)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은 이 무렵부터 세계적인 세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역사가들이 미국의 등장에 대해서 기록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증거하는듯한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예언에 따라서, 미국은 당시 문명 세계가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장소인 신세계에서 태동하였다. 미국은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한 형태의 헌법을 만들었으며, 개신교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가지 위대한 원칙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교회와 국가를 법에 의해서 완전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종교와 국가가 서로 간섭하거나 핍박하지 못하게 하였다. 미국의 건국자들인 청교도들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하고, 양심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신대륙을 찾아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종교가 국가의 권력을 빌려서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매우 반대하였던 사람들이었다.

1754년,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부흥 설교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 번째 짐승을 교황권이라고 해석한 다음, 두 번째 짐승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감적인 기록을 남겼다. “또 다른 짐승은 이제 곧 나타날 것이지만,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두 번째 짐승은 42달의 끝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New Testament with Explanatory Notes, pp. 427. 여기서, 우리는 요한 웨슬리가 곧 나타날 한 국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오직 미국만이 요한 웨슬리가 기다리던 국가의 조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미국의 예언에 대한 연구를 여기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 13장 11절뿐만 아니라12절도 미국에 대한 예언의 계속이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lamb)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요한계시록 13:11-12. 12절은 미국의 모습이 어린 양 같은 모습에서 용처럼 말하는 모습으로 변할 때가 있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미국이 사람들에게 첫번째 복합 짐승(교황권)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하는 세력으로 둔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요한계시록 13:14-17

한 국가는 법을 통하여 말한다. 미국이 종교적인 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또한 미국이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의 경배를 강요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미국의 그러한 변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미국은 짐승의 우상(image) 즉, 교황권을 닮은 어떤 세력을 만들 것이다.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서 막강한 세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면 종교적인 법을 강요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모습은 교황권을 매우 흡사하게 닮은 모습이 된다.

요한계시록에 오해할 수 없는 언어로 예언되어 있는 것처럼, 미국은 마침내 짐승의 표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보면, 거짓 안식일이 짐승의 세력에 의해서 세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을 지키는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교황 권의 권위에 충성을 바치는 표가 된다. 결국, 미국은 일요일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예언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데, 지금 현재 미국의 정부와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건국 당시에만 해도 미국에서 카톨릭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청교도들은 카톨릭의 핍박을 피해서 조국과 재산을 버리고 신대륙인 미국을 찾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카톨릭교회는 그들에게 있어서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미국이 레이건 대통령 때에는 바티칸에 대사를 보내게 되었으며,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 과정에서 교황 권과 극비리에 동맹하였던 것이 타임 지에 대서특필 되었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 카톨릭 교인수는 어떤 단일 기독교 교단의 교인수보다 압도적으로 많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미국 의회 의원가운데 카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의석 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범죄가 크게 범람함에 따라서, 미국 정부는 국민들을 지도하고 교육시키는 면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력을 크게 필요로 느끼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종교와 국가 권력의 연합을 이룩하는 데에 결정적인 동기가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출마자들은 <크리스챤 콜리션> 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정치 단체가 각 교파의 교회들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199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리스쳔 콜리션이 지원했던 거의 모든 의원들이 상, 하원 선거에서 낙승을 거두었던 사실이 신문과 방송에서 크게 보도되었다. 이와 같이,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의 종교 단체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모습은, 미국의 변신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성취가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일요일 예배를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믿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언은 그 예언이 당대에 사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성취되는 순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실감하거나 느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초가 이미 놓아져 있다. 모든 국가에서, 일요일은 휴일로서 법제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 준수 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교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 남부에서는 일요일에 상점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법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이 있으며, 죠지아 주 같은 곳에서는 일요일에 술을 팔지 못하는 법이 실시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17에는 짐승의 표가 매우 강압적인 경제적인 제재와 함께 강요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일요일 휴업령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법원은 일요일에 휴업해야 된다는 법령이 합법적이고 공정한 법이라는 견해를 나타내 왔다.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는 모든 주에서 일요일 휴업령을 제정할 수 있는 문호를 열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서 침해 당하게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대다수의 국민과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는 소수가 양보해야 된다는 논리로서 일요일 휴업령이 제정될 수 있는 것이다(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63호 참조). 더구나 도덕과 범죄가 날로 악해져 가는 현 상태에서, 일요일 휴업령은 청소년과 국민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옮길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은 처음에는 매우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시행될 것이지만, 점차적으로 강력한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 예언에 따라서, 일요일 휴업령은 미국에 의해서 주도될 것이다. 결국, 안식일에 대한 쟁점은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일요일 예배와 토요일 예배 중에서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안식일을 범하기로 선택하는 자들에게 찍혀질 것이다. 일요일 예배를 지지함으로써, 교황권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게 되며, 하나님의 창조와 권위를 상징하는 제칠일 안식일에 대한 거절을 표시하게 된다.

결정해야 할 시간

어떤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예언의 성취 직전에 살고 있다. 안식일 준수의 문제에는 나와 여러분들의 영생이 걸려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단의 최후의 대 쟁투에서 누가 사람들의 인정과 순종을 받는가에 대한 문제도 걸려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문제는 생활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초월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기록한 십계명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다.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순종과 사랑을 시험하는 테스트가 된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 4:17

사단은 마지막 시대의 대 쟁투를 위해서, 수세기 전부터 준비해 왔다. 사단은 교황권을 통하여 중세 시대에 이미“때와 법을 변개” 시킴으로써, 온 세상을 깊은 기만 가운데로 몰고 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통하여 사단의 그러한 계획을 폭로하셨으며, 미국의 출현과 변신에 대한 예언을 주셔서, 하나님의 성도들로 하여금 피할 길을 예비하여 주셨다. 지금 온 세상은 두 개의 깃발 아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역사를 통하여 사단과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졌던 대 쟁투가 이제는 그 마지막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종교통합 운동에 의해서, 모든 교단들이 진리를 타협하면서 하나로 뭉쳐지고 있다. 이렇게 뭉쳐지고 있는 교단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에 대한 불순종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또 한 무리가 다른 깃발 아래로 몰려들고 있는데, 그들은“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로서 구별되고 있다(요한계시록 14:12). 시험이 심각해지면 질수록, 각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과 사람의 전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인을 받든지, 짐승이 만들어 놓은 거짓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짐승의 표를 받든 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이 제시하고 있는 마지막 투쟁은 짐승의 표를 받을 자들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지금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때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킹제임스 영문 성경 역)

posted by Jangjaed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