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2장 21절
"야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그가 잠들었다. 야붸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갈비뼈들 중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에 살로 덮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지구 인류 역사상 최초의 수면 마취 외과 수술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살을 찢고 갈비뼈를 끊어내실 필요가 있었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것 보다 아담을 지으시던 것처럼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 주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담을 깊이 잠재우신 다음에 그 몸의 중요한 부분을 잘라내어 여자를 만드신 것은 남자나 여자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남자 자신의 다른 분신임을 깨달아 알고 아끼고 사랑하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한 혈통인 것이다. 두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다. 물론 여자의 입장에서도 남자는 여자 자신의 다른 한 분신임을 알고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2장 22절
"야붸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취하신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어 그 사람에게 그녀를 데려다 주셨다."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어 그 사람에게 그녀를 데려다 주셨다."라고 한 말씀에서 보면 아담이 잠들어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여자를 만드셨을까? 바로 흙을 취하여 아담을 만드신 그곳에서 아담을 만드신 그 흙을 취하여 그 갈비뼈와 흙으로 여자를 만드신 후에 아담을 재우셨던 곳으로 돌아오셔서 잠에서 깨어난 아담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주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처음에 2장 23절
"그 사람이 말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다. 이는 여자로 불리리니 남자에게서 이 여자가 취해졌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그 여자가 자기의 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기의 가슴 한 켠이 허전한 것을 느끼고 그곳을 보니 자국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 자국을 어루만지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여자를 이끌고 그에게서 오셔서 그 여자를 소개하실 때 그의 가슴은 바다의 파도처럼 거세게 일렁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서 자기의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곧 바로 그 여자가 바로 자기 가슴의 한 구석을 허전하게 만든 원인인 것을 알고는 감격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 라고 소리친 것이다.
처음에 2장 24절
"그러므로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를 떠나 그의 아내와 붙어서 한몸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결혼제도를 만들어 주시고 그 방법까지 알려주신 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부모에게서 양육받는 것을 그만두고 여자와 더불어 온전한 한몸을 이루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이나 생각으로 서로 사랑하거나 한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서로 붙어서 더욱 친밀한 하나를 이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 말씀을 어기고 살므로 가장 원천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먹고 사는 일이나 자식의 교육문제등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붙어서 한몸을 이루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이룬 후의 일임을 명심해야된다. 하지만 지구 종말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는 파울의 말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혼자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어 헌신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처음에 2장 25절
"그 사람과 그의 아내 그들 둘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모습이 회복되어야할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는 깨벗고 다녀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들의 어렸을 때 보다 더욱 더 순진했으므로 벌거벗은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몸에 무엇을 걸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타락하기 전의 에덴동산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 모두 예슈아 마쉬아흐를 힘입어 그 낙원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처음에 2장"을 마무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만큼 하늘로부터 깨우쳐 주심이 오지 않아서였다. 이제 짐이었던 "처음에 2장"을 마무리하고 3장을 바라보는데 더욱 흥분되는 것은 무슨 일인가? 아마도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인 것 같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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